조선시대엔 이혼이 무척 어려웠다. ‘시부모의 3년상을 부부가 함께 치렀다든지, 처(妻)가 마땅히 돌아갈 곳이 없다면 갈라서지 못한다’ 등 별의별 조건을 다 내세워 나라에서 엄격히 금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가정파탄을 최대한 막자는 의도였으리라. 그러나 한편으론 당시 유교적 가부장제(家父長制) 아래서 여성들을 한없이 옥죄기 위한 정절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는 비판도 있다. 즉 여성의 정절을 지키게 하자니 재혼이 금지됐고, 또 재혼을 못하는 사회에서 이혼녀가 많아진다는 것은 곧 심각한 사회문제를 뜻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여성들이 가사(家事)외엔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이혼 양산은 바로 여성 실업자 양산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야 어떻든 덕분에 가정이 하루 아침에 깨지는 일들은 상당히 막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빛을 잃어서인지 이혼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은 모양이다. 날이 갈수록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해엔 하루 평균 자그마치 135쌍의 부부가 이혼소송을 냈다고 한다. 이는 전년도보다 13.5%나 늘어난 것으로 단순 수치만으론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것도 사회발전의 한 단면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유교이념에 흠뻑 젖었던 선조들이 안다면 분명 땅을 칠 노릇일 법하다.

“백년가약(百年佳約)이란 말뜻에는 일생을 변함없이 살라는 부모와 형제, 친척들의 축복이 들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부부가 되면 이혼이란 몰랐으며, 간혹 그렇게 되는 일을 수치로 여겼다.” 북한의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기관지 ‘조선녀성’ 7월호에 실린 글이라고 한다. 요즘 북한에선 이혼방지 캠페인이 한창이라는 소식이다. 이 캠페인은 주로 ‘조선녀성’이 앞장서고 있지만, 지난 해엔 이혼을 소재로한 ‘엄마를 깨우지 말아’ ‘가정’ 등의 TV드라마까지 방영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혼문제가 오죽 심각하면 그 무섭다는 통제사회에서까지 그럴까 싶다.

그러고 보니 이혼 좋아(?)하는 건 남북한이 따로 없는 모양이다. 이 또한 ‘민족의 동질성’이라고 해야 할까.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