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지난주부터 벌초객들의 행렬이 줄을 이어 전국의 고속도로와 국도가 평시보다 훨씬 붐비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추석연휴가 예년과 달리 3일밖에 안돼 교통혼잡에 대비해서 미리 벌초나 성묘를 다녀오려 하기 때문이리라. 성묘라 함은 본디 어두운 땅(墓)을 살펴본다(省)는 뜻으로 벌초와 차례 지내기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도 흔히 잡초를 제거하고 잔디를 깎아주는 벌초를 성묘와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음력 8월 초하루를 지나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가 되면서부터 추석전날까지는 벌초를 끝내고 한가위 날에 조상을 찾아 예를 올리는 것이 자손의 도리로 여겨왔다. 그래서 한가위 날 벌초를 하지 않은 묘를 보면 흔히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임자 없는 묘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같은 동양권에서도 이처럼 벌초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나라 뿐인 것 같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은 일단 국가적 차원에서 제례문화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제삿날이 되면 시골이나 일부가정에서 조상의 추억을 되새기며 조용히 지낼 뿐이다. 특히 문화혁명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단지 고향을 찾는 명절로서 의미를 둔다고 한다. 일본도 제삿날이나 명절이 되면 묘지에 가서 납골묘에 안치된 유골이나 비석을 깨끗이 닦고 꽃을 꽂아 놓지만 우리처럼 차례의식은 없다. 다만 한국만이 설 단오 한식 추석 등 4대명절에 성묘의 전통을 지켜가며 조상에 대한 효(孝)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판에 이번 태풍과 수마로 인해 조상의 묘지와 유골을 잃은 유족들의 맘이야 오죽하겠는가. 본의 아니게 조상에게 성묘를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는 마음은 그만 두고라도 유골이라도 찾았으면 얼마나 다행일까.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라도 이번 추석에는 수해지역에서의 연휴 행락을 삼가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된다. '조상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자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은 '프랑스 혁명의 고찰'을 쓴 버어크이다. 이는 천재지변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두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상을 섬기는 마음가짐 이리라. <성정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