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역대 왕들 중엔 기껏해야 11~13살의 철부지 나이에 왕위에 올랐던 이들이 몇 있다. 12살에 즉위한 6대 단종을 비롯, 13살에 왕위를 계승한 9대 성종, 11살 때 왕위에 오른 23대 순조, 12살에 왕이 된 26대 고종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어린애 티도 제대로 벗지 못한 그들이 정사를 다룰 능력이 있을 리 없었다. 대개는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수렴청정(垂簾廳政)을 해야 했고, 또 정치를 익혔을 리 없는 아녀자들이 정사를 돌보다 보니 정국혼란이 다반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단종과 같은 경우는 마침내 숙부인 수양대군(7대 세조)에게 즉위 3년만에 왕위를 찬탈당했고, 곧 이어 목숨마저 빼앗기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어린 나이로 버거운 지위에 올라 권세와 부(富)에 되레 짓눌림을 당해야 했던 경우는 서구사회에서도 더러 있었다. 특히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 교회 사교(司敎)들에서 그런 경향이 아주 심했다. 일례로 1471년 교황에 선출된 식스토 4세는 리스본의 대사교구를 8살짜리에게 맡겼고, 밀라노의 사교구는 11살짜리 소년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의 후계자들도 이를 답습, 인노첸시오 8세와 알렉산더 6세가 재위한 20년 동안엔 무려 50개에 달하는 사교구가 어린애들 차지였다고 한다. 탐욕 타락의 대명사로 불리던 교황들답게 돈이나 힘이 실린 자리라면 모조리 가까운 친인척들에게 나눠주다 보니 나이 따윈 상관할 바가 못되었던 모양이다.

경우는 달라도 비슷한 상황이 요즘 우리나라 경제계에서도 빚어지고 있다. 놀랍게도 경제활동을 전혀 했을 리 없는 10대 이하 미성년자들이 보유한 주식이 자그마치 1천600억원어치가 넘는다는 것이다. 이중 10억원어치 이상을 가진 미성년자가 44명이나 되고, 혼자서 무려 83억원어치나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두살짜리가 13억7천만원어치를 보유하기도 했다.

어른들 타산과 탐욕이 만들어낸 미성년 거부(巨富)들. 부러워해야 할지, 속상해 해야 할지…. 우리나라 경제가 왠지 자꾸 불안하게만 느껴지던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朴健榮(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