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논 벌판에 이삭이 패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에 허수아비가 등장한다. 벼 이삭 먹이를 찾는 새떼들을 쫓기 위함이다. 비록 속임수이기는 하나 농촌의 서정이 살아있다. 그러나 새떼들의 허수아비에 대한 경계행동은 불과 7~10일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나는 딸랑이가 달린 깃발이나 반사경이 교대로 사용된다. 과일을 쪼아 먹는 까치를 잡기 위해서는 쥐덫식 트랩이 사용된다. 생선조각을 덫 위에 놓고 까치를 유인해서 잡는 방식이다. 포획률이 30%가 넘을 정도로 꽤 높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새들은 하도 영악해져서 허수아비나 딸랑이 깃발같은 속임수에 잘 속지를 않는다는 것이 농민들의 하소연이다. 그래서 허용된 것이 공기총을 사용한 포획이다.

허수아비와 같은 속임수 방법은 때때로 의료에서도 사용된다. 플라세보 효과를 노린 대체약물 투여방법이 그것이다. 질병이 없는데도 질병이 있다고 믿는 노이로제 환자에게 비타민과 같은 영양제를 특효약이라고 속여 투여하면 증세가 호전되는 효과다. 플라세보(Placebo)란 '기쁘게 해준다'는 라틴어가 어원이다. 반면 플라세보의 부정적 역효과, 즉 노세보(Nocebo)효과란 것도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 부작용에 대한 경고를 한후 플라세보를 투여한 결과 실험대상 20% 정도에서 현기증 두통 우울증과 같은 역효과가 나타났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

최근 한국 도로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고속도로에 설치된 무인 카메라 가운데 40%가 촬영기능이 없는 모형카메라인 것으로 밝혀졌다. 10대중 4대가 고속도로상의 허수아비인 셈이다. 경부고속도로는 38대중 20대, 동해고속도로는 8대중 7대, 88고속도로는 26대중 20대가 가짜 카메라라고 한다. 국민을 상대로 법질서를 확립해야하는 행정에 이처럼 허수아비식 속임수 방법을 동원한다는 발상 자체가 우습다. 한때 경기도내 주요 도로에 경찰관 모형을 설치했다가 효과가 없어 철수한 적도 있다.

이러한 모형을 이용한 행정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눈치보기와 불신, 그리고 새로운 탈법요령을 터득토록 유도하는 노세보 효과만을 가져올 뿐이다. <성정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