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를 만드는 풍습은 고대 이집트와 잉카제국에서 성행했다. 대체로 기원전 2천600여년 전부터 시작돼 그리스도교 시대에까지 계속된 것으로 알려진다. 미라는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기 때문에 사후에도 영혼이 돌아와 깃들어 있을 육체가 보존돼야 한다는 토속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미라가 주로 이집트나 잉카제국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은 건조한 기후가 보존에 적합하기도 했고 당시 이들 국가들의 방부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런 미라는 처음에는 파라오(이집트 왕)의 특권이었지만 나중에는 일반인들에게도 허용됐다. 미라를 만드는 방법도 업자에게 지불하는 돈에 따라 달랐다고 한다. 돈을 많이 줄수록 훌륭한 미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에서도 초기에는 천연 미라가 많았으나 수당 시대에 들어와 과학적 기술을 동원한 인공미라가 만들어졌고 일본에도 전해졌다.

어쨌든 항상 근거없는 소문으로 밝혀지는 미라를 둘러싼 각종 앙화도 영혼과 육신의 불멸을 기원하는 인간의 끝없는 소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카터가 고대 이집트 왕이었던 투탕카멘의 미라를 발굴했다가 화를 당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그는 80이 넘도록 장수함으로써 이러한 앙화설을 말끔히 해소한 적도 있다.

조선 중기 삼도 통제사를 지낸 남오성 장군의 시신이 최근 충남 태안군의 의령 남씨 선산에서 원형에 가까운 미라로 발견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발굴 7시간만에 전격 화장된 사실이 알려져 또 한번 화제가 되고 있다. 이유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발굴 현장에 참석한 공무원이나 관계자 가운데 문화재 담당자는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선산 인근에 들어서는 환경사업소 진입로 문제로 환경 공무원이 나와 이를 지켜 봤다고 보도되고 있다. 약 5천년 전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산 야생고양이가 고대 이집트인에 의해 길들여져 점차 세계 각지에 전해졌다는 학설도 고양이의 미라를 연구한 결과 나왔다고 한다. 매장문화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아야 할 것 같다. <성정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