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의 귀감(龜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유쾌하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도 꽤 드물성 싶다. 특히 스스로는 별로 대수롭잖게 여겼음에도 남들이 되레 대단하게 보아주고 또 본받으려 한다면, 한편으론 다소 쑥스럽기도 하겠지만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고 마음이 들떠지는 게 우리네 장삼이사(張三李四:보통사람)들이다.
20~30년 전 많은 후진국들이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부러워하고, 또 이를 배우겠다며 시찰단까지 보내왔을 때 우리 국민 마음이 꼭 그랬다. 90년대 초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이 지난 날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자문을 구했을 때도 그랬고, 2년 전 싱가포르가 한국의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운동을 배워가겠다고 발벗고 나섰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가 세계 여러나라들에 모범을 보인 것들이 제법 적지않은 것 같다.
불과 며칠 전에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 한국을 배우자’고 역설했다. 그는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지난 20여년 간 일본을 귀감으로 삼아왔지만, 이제는 일본의 실패(경제침체)를 거울로 삼아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본은 문화를 전반적으로 바꾸고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열성을 보이다 경제침체를 가져왔다. 일본 젊은이들은 서구에 완전히 빠져있다. 그들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귀고리를 하거나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등 서양인처럼 보이려 하면서 자국문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반면 ‘강한 애국심과 훌륭한 근로 윤리를 갖고 자국의 전통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은 경제위기에서 너끈히 벗어났다’고 극구 찬양하면서 ‘말레이시아는 이같은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권고했다.
칭찬들어 나쁠 건 없을텐데, 공연히 거북스럽고 버겁게만 들리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모하마드 총리가 한국과 일본을 너무 단순한 논리로 비교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노랑머리 찢어진 청바지가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만은 않아서일까. 어찌됐든 칭찬받은 값을 치르자니 전에 없이 괜히 조심스러워진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버거운 칭찬
입력 2002-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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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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