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목(木)+돼지 해(亥)'의 '핵(核)'이라는 글자만은 목가(牧歌)라도 울려나올 만큼 평화롭다. 이런 느낌의 이유는 또 있다. '核'이 '풀뿌리 해'자의 생략 글자이기 때문이고 '核'의 본뜻이 과일의 씨를 가리키는 까닭이다. 따라서 '핵과(核果)'라고 하면 복숭아나 살구처럼 씨가 단단한 핵으로 싸여 있는 열매를 가리킨다. '핵심적인 인물'이란 바로 핵과의 씨 같은 인물일 것이다. 한데 '핵가족(nuclear family)'만은 '최소단위 가족'으로 호칭을 바꿔야 할 것 같다. '핵'을 뜻하는 영어의 뉴클리어(nuclear)가 '세포'나 '씨'보다는 '핵무기' '핵전쟁'이라고 할 때의 그 미세한 알맹이인 원자 '핵'부터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후 미국엔 별난 반핵 포스터가 등장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 리 대신 레이건 할아버지가 영국의 대처 할머니를 번쩍 들어 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 코믹한 포스터를 보는 웃음기는 배경의 검은 핵폭발 버섯구름으로 인해 사정없이 가셔버렸다. 체르노빌 사고의 그해 10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그 유명한 '핵겨울' 주제 세미나에서 체르노빌 희생자들의 치료를 맡았던 레오니드 일린 박사가 경고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적어도 20억 지구인이 몰사할 것이다.” 아니, 54년 미국의 태평양 비키니 환초의 핵실험만으로도 1만5천명이 죽었다는 게 지난 2월28일자 '유에스투데이'지의 보도였다.
미국 '원자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인간적 고뇌를 그린 '멸망의 창조'나 56년 네바다주 핵실험을 소재로 한 '제로지대' 등 영화 제목이 아니더라도 핵전쟁이란 곧 '최후의 심판의 날(doomsday)'을 맞는 파멸 행위다. 핵확산금지조약이 68년 조인, 70년 발효된 것도 그 때문이고 북한의 핵 포기와 사찰을 못박은 94년 제네바협정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북한이 그런 중대한 국제 협약을 어겼다는 것은 상식 이하와 양식 이전이다. '핵 포기 전에는 협상 없다'는 미국 측이 혹여 북한을 이라크 차원으로 끌어내리지나 않을까 오싹해진다. <吳東煥(논설위원)>吳東煥(논설위원)>
핵 위협
입력 2002-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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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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