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뛰어난 정치가이자 웅변가로서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 승리로 이끄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윈스턴 처칠(1874~1965). 정치가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1953)한 경력도 특이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를 무엇보다도 소신과 신념의 정치인으로 기억한다. 1930년대 나치 독일에 대한 유화론이 주를 이룰 때 홀로 강경론을 고수했을 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소련의 동맹을 제창한 것도 바로 그였기 때문이리라.
종전 후 어느 날 그가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했을 때 일이다. 수많은 청중의 열광적 환영을 받으며 연단에 오른 그는 느닷없이 “포기하지 말라”고 힘있는 목소리로 첫마디를 뗐다. 의아해진 청중이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처칠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천히 연단을 걸어내려 갔다. 비록 단 두마디로 축사를 끝냈지만, 그가 얼마나 소신을 중히 여기는지를 재삼 일깨워준 일화라 하겠다.
그런 처칠도 정치인 지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1900년 처음 보수당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나 4년 뒤 당적을 자유당으로 옮겼고, 1921년엔 다시 보수당에 복귀했다. 시쳇말로 철새 정치인, 박쥐 정치인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이를 비난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굽히지 않는 소신과 그가 남긴 큰 족적이 이를 상쇄시키고도 남았음이리라. 하긴 그가 두번씩이나 당적을 옮긴 것도 보수당의 보호관세정책에 반대해서라든가, 자유당의 노동정책에 대한 위구심에서 비롯되었음을 감안한다면 반드시 비난받을 일만은 아닐듯도 싶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대선의 계절이 다가오자 정치권이 또 다시 들썩거린다. 비록 일부지만 나름대로 소신(?)들을 펼칠 새 둥지 찾기에 여념들이 없다. 이미 몇몇은 자못 비장한(?) 각오를 내세우며 당적을 옮겼고, 또 몇 무리는 이쪽 저쪽 저울질이 한창이다. 그리고 보니 우리 나라에 처칠 숭배자가 꽤 많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의 굽힐 수 없는 소신이 딱히 무엇인지는 퍽이나 알쏭달쏭하지만.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알쏭달쏭
입력 2002-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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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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