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엔 두 가지 성(聖)스런 존재가 있었다. 하나는 볼셰비키혁명 지도자 레닌, 다른 하나는 붉은 군대(Red Army)였다. 그 당시엔 아무도 레닌의 위대함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할 수 없었고 그의 어록은 '이즈베스티야'와 '프라우다'지에 매일같이 게재됐다. 그들 적군(赤軍)의 위상은 소련 헌법에 이렇게 명시됐다. “군은 조국을 방위하며 사회주의 이념을 사수한다. 군은 공산당의 방패다.” 마르크스도 '제1의 애국자'인 군대를 가리켜 “혁명의 객관적 제1 요소”라고 치켜세웠다. 56년 헝가리 침공, 68년 체코 침략으로 위세를 드높였던 그 붉은 군대는 그러나 70년대 브레즈네프 시대를 정점(頂點)으로 고르바초프에 의해 끌어내려졌고 더욱 절실한 금석지감(今昔之感)은 러시아가 지난 3월 모병제, 즉 지원제를 택했다는 사실이다.

한데 북한의 군대는 아직도 소련 브레즈네프 시대 그대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년부터 '120만을 70만으로 감축하고 11년(여자 7년)의 복무 기간을 5년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아무리 전 인민개병(人民皆兵)을 외쳐왔다고는 하지만 인구 2천만에 120만의 군대라니! 복무기간도 '강산이 변한다'는 장장 11년이라니! 그나마 5년으로 줄이는 대신 징집 대상을 35세까지 연장한단다. 요즘 '양심 입대 거부'니 '지원제'를 주창하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느낌은 과연 어떨까.

프랑스는 92년부터 복무기간 12개월을 10개월로 줄였고 독일과 이탈리아도 10개월이다. 하늘 아래 '군사 천국'은 스위스다. 단기간의 군사교육만 받은 뒤 생업에 종사하다가 유사시 예비군으로 동원되는 '민병제'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2년이고 대만도 22개월이다. 북한 말고 복무 기간이 가장 긴 나라는 미국의 3년(육군·해병대)∼4년(해군·공군)이 아닌가 싶지만 징병제가 아닌 지원제다. 가장 가혹한 징병국이라면 세계 유일의 남녀 징병제도에다가 복무 기간이 남자 3년, 여자 20개월인 이스라엘일 것이다. 제대 후에도 54세까지 연간 30∼45일간 동원훈련을 받아야 한다. 11살의 최연소 소년 징집 국가인 미얀마도 별난 나라다. 천지지간, 하늘 아래 땅 위에 별난 나라들도 다 있다. <吳東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