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말연시가 되면 사주팔자를 보면서 한 해의 운세를 점쳐보는 일을 즐겨 한다. 이른바 역학(易學)과 철학(哲學)의 원리에 의해 사람은 태어난 해(年)와 달(月), 날(日), 때(時)의 정해진 운명에 따라 일정한 인생길을 걷게 된다는 주장이다. 사주를 제대로 풀이해 낼 수 있다면 인간의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부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자들 조차 역술인을 찾아 자신의 운명이나 운세를 점쳐달라는 이들이 늘고 있을 정도다. 특히 요즘 시중에선 대통령 후보들의 사주팔자에 대한 설왕설래로 가득하다. 세 사람만 모이면 각 당 대통령 후보들의 인물평이나 사주, 관상을 얘기하면서 흥미를 돋운다. 실제 대통령 후보나 부인, 측근들이 직접 유명하다는 역술인이나 스님을 찾는 일이 많다고 한다.

주간지나 심지어 일간지 등 언론에서도 역술인들을 통해 대통령후보 본인들의 의사에 관계 없이 사주와 관상을 분석, 독자들의 흥미를 끌고 있고 대선후보들 조차 여기에 관심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DJ가 96년 대선을 앞두고 찾아갔을때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을 예언했다는 경북 봉화의 한 스님에게는 지금도 수많은 정치인과 대선후보, 또는 부인들의 예방(?)이 줄을 잇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사월 초파일 전날 법당에 자리가 없어 일부 유력 정치인들이 담요를 뒤집어 쓰고 마당에서 밤을 지샌 다음날 무릎걸음으로 수십개의 계단을 기어 올라가 스님에게 봉양을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어떤 후보는 최근 이 곳 스님이 직접 자신에게 대권이 갈 것이라고 예언했다며 한껏 고무됐다는 후문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자신의 운세를 점치거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용하다는 단골 역술인을 찾는 것은 흔한 일이다. 국내 일부 대학원에서도 사주를 다루는 명리학 강의가 공식적으로 이뤄지는 시대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보다는 정치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신념과 확신 있는 비전을 더욱 보고 싶어 한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야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마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이나 그 주변 사람들이 사주나 관상(觀相)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우리 정치권을 생각하면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李俊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