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미 카터 정부(1977~1981년)에서 부통령을 지냈던 월터 먼데일. “나는 대통령의 신임과 그의 귀를 갖고 있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그는 카터 정부에서 비교적 영향력이 있었던 부통령이었다고 한다. 민주당내에서도 리버벌파(派)에 속했던 그는 내정면에선 소비자운동 공민권운동 등으로 활약했고, 외교면에선 자유무역의 추진을 내세웠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1993년 일본 주재 대사를 지낸데다 1981년과 1992년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했을 만큼 우리에게도 제법 낯이 설지않은 정치가이다.

그런 먼데일이 1984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돼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와 접전을 벌였을 때 일이다. 어느 날 TV토론에 나온 그는 엉뚱하게도 당시 73세였던 레이건의 나이를 트집잡았다. 상대적으로 자신의 젊음(당시 56세)을 한껏 과시하자는 의도에서였으리라. 어쩌면 자신은 생전 늙지않고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반대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샀다. 그리고 꼭 그일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여하튼 그는 그해 선거에서 레이건에게 완패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때의 작은 실수로 최근 그는 뒤늦게 또 다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엊그제 끝난 중간선거에 출마(미네소타주 상원의원)하면서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때(1984년)의 레이건보다 지금 당신의 나이가 한살 더 많지 않느냐”는 짓궂은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참으로 끈질긴 업보라 하겠다.

이제 선거는 끝났지만 당선여부야 어찌 됐든 ‘과거를 묻지 마세요’란 말이 요즘의 그만큼 절실히 와닿는 사람도 꽤 드물 것 같다. 한편으로는 동양사회의 오래된 경구 ‘역지사지(易地思之:상대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다)’가 왜 필요했는지도 뼈저리게 깨달았을 듯싶고. 그런 차원에서도 먼데일의 일은 많은 이들에게 나름대로 교훈을 남겨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과거지사는 모두 불문에 부칠테니 제발 내편만 되어다오”라고 외쳐대는 요즘의 한국 정치풍토에선 별 의미도 없겠지만.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