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배울 때 코치로부터 처음 듣는 가르침 제1조는 어깨와 손에서 힘을 빼라는 것이다. 몸이 부드러워야 공을 제대로 맞출 수 있고 거리가 나기 때문이다. 검도선수는 눈빛이 부드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수련중인 검도선수는 눈빛이 날카로우나 명인의 경지에 들어서면 상대를 보는 눈빛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그래야만 상대가 방심하고 이틈을 노려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논리다.
일본의 프로야구 홈런왕 왕정치 선수의 현역시절 그의 외발타법의 스승은 아라카와(荒川博)씨였다. 아라카와씨가 어느날 야쿠르트팀의 투수를 만났을 때다. 이 투수는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타석에 들어선 왕선수의 눈매를 보면 무서워요.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말입니다. 이런 눈매의 타자를 보면 투수는 몸이 움츠러 들고 맙니다.” 그러다 보니 투수는 팔 근육이 긴장되고 타자가 치기 좋아하는 공을 던지지 않는다. 어쩌다 실투할 때만 안타를 허용할 뿐이다.
이 말을 들은 아라카와씨는 곧바로 왕선수를 만났다. “왕정치, 너는 선수로서 아직 멀었다. 눈빛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정도라면 진짜 선수가 못돼. 진짜 승부사라면 눈매가 부드러워야 해.” 타자가 부드럽고 다정한 눈빛으로 투수를 대하면 투수는 심리적으로 안심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안심을 시킨 후 타자는 자신만의 무기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 아라카와씨의 훈계였다. 왕선수는 그후 표정을 바꿔 일본의 홈런신기록을 세우고 세계기록도 작성했다고 한다.
삼성과 엘지간의 2002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막바지에 이른 7일 유승안씨가 한화 이글스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에서 2년간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한 기자가 유 감독에게 물었다. “한 미 일의 프로야구 차이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것은 선수들의 눈에 있다.” 그러면서 그는 “사슴처럼 맑은 눈을 가진 선수는 필요없다”고 말했다. 유 감독의 강한 눈빛론과 아라카와씨의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눈빛론이 혹시 한일프로야구의 차이가 아닐는지. 프로야구가 출범한지 20년, 2002 한국시리즈를 끝내면서 한번 음미해 볼만한 일이다. <성정홍 (논설위원)>성정홍>
선수의 '눈빛'
입력 2002-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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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0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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