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을 때가 많다. 아빠는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모르겠다. …숙제가 태산같다. 성적이 안올라 고민스럽다….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 충남 천안시의 한 초등학교 5년생인 11세 소년은 이같은 일기를 남겼다. 그리고 아파트 베란다 가스배관에 끈으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이 소년은 방과후 여러 학원을 다니느라 밤늦게 귀가했고 친구들에게도 과외와 숙제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순진하고 생기 넘쳐야 할 나이의 어린 이 소년은 자신에게 옥죄어 오는 과외의 중압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 어린이의 눈에는 어른들의 주 5일제 근무제도를 둘러싼 실랑이들이 한낱 사치스런 논쟁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주5일제 근무제실시의 대가로 어린이날을 토요일로 변경하는 문제도 어린이날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착각, 어른들을 증오했는지도 모른다. 누가 이 어린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그래서 가도(家道)는 바르게 된다'는 중국 역경(易經)의 가르침이 생각나서다. 숨진 소년은 몸만 가족의 일원으로 있었지 마음은 이미 가족을 떠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철야근무를 하고 귀가한 후에야 아들의 죽음을 맞이한 맞벌이 부모의 마음은 이래서 더욱 억장이 무너졌으리라. 2년 전인가.
한 조사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공부좀해라” “옛날에 엄마 아빠가 어렸을 적에는…” 등의 말이었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채찍을 맞으며 달리는 경주마 신세가 되기 싫다는 뜻일 게다.
자기 자식이 뒤쳐지는 것을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쉴러가 '군도(群盜)'에서 말한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을 부자지간으로 맺어주는 것은 혈육이 아니라 애정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교육도 채찍보다는 애정이 앞서야 한다. <成定洪 (논설위원)>成定洪>
11세 소년의 자살
입력 2002-11-11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2-11-11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