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賊)’은 절도, 강도 등의 ‘도적 적’자다. 그런데 ‘세계 언론자유의 날’ 하루 전인 2000년 5월2일 세계 ‘언론인 보호 위원회’가 선정, 발표한 ‘언론자유 10적(賊)’은 ‘언론 절도’를 말함인가 ‘언론 강도’를 일컫는가. 언론을 훔치는 게 아니라 강제성을 띠는 것이니까 후자를 뜻하는 것인가. 아무튼 그 ‘10적’ 중엔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 주석,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하메네이 이란 최고 종교 지도자,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 등이 끼어 있지만 카스트로가 6연패, 장 주석이 4년 연속이니까 ‘언론자유 10적’의 두목과 부두목은 가려진 셈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도 작년 같은 날 30명의 ‘언론자유 공적(公敵)’을 발표했다. 거기엔 쿠바의 카스트로를 비롯해 이라크의 후세인과 러, 중, 북한 최고 지도자가 포함됐다.

한데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 알리 튀니지 대통령 등을 밀어내고 당장 ‘언론자유 10적’에 들어야 할 사람은 지난 3월 대통령 당선 이틀만에 ‘언론 통제법’에 서명한 짐바브웨의 무가베 그 사람일 것이다. 그 ‘언론 통제법’이라는 게 ‘국내 기자는 기자 면허를 받아야 하고 외국 기자는 짐바브웨에서 공식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기상천외, 어불성설의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그런 패악(悖惡)적 언론 탄압 사례는 도처에 흔하다. ‘10적’ 국가답게 이란은 2000년 3월 16종의 신문 잡지를 폐간 조치했고 중국은 작년 6월 민영 3개 신문을 폐쇄 또는 발행 정지시켰다.

하기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언론자유 수준도 중남미의 코스타리카나 아프리카의 베냉보다도 떨어지는 139개국 중 17위와 28위라는 게 지난 달 ‘국경 없는 기자회’의 발표였다. 그런데 안타깝고 구슬프게도 한국의 언론자유가 80개국 중 53위,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평가가 12일 제네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나왔다. 그러다가 ‘10적’이니 ‘몇 적(賊)’에 낄까 두렵다. 물론 일부 무책임하고 분별없는 언론 폐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OECD 꼴찌에다 ‘몇 적’ 후보국은 곤란하지 않은가. <吳東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