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여년 전 몽고군의 침공으로 부랴부랴 강화도로 피난갔던 고려 조정과 왕실은 부처의 힘으로 몽고군을 물리치겠다는 소망하에 대장경(大藏經: 經·律·論 등 三藏의 불교경전) 조판에 착수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8만여장의 목판, 즉 팔만대장경판이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3년인 1236년부터 38년인 1251년까지 장장 16년 간에 걸쳐 제작됐다.
당시 대장경의 조판을 알리는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을 보면 ‘몽고의 잔인과 암매(暗昧)를 불천(佛天)에 호소하면서 그로 인해 분멸(焚滅)된 대구의 부인사 대장경에 가름하여 다시 각성(刻成)할 터이니, 신통력을 발휘하여 몽고병의 침입을 물리치고, 국가가 평안하게 해줄 것’을 간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통력은 발휘되지 못했고 그후 100여년 간 고려는 몽고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이처럼 비록 신통력은 발휘되지 못했지만, 팔만대장경에는 당시 고려 불교계의 경전에 대한 높은 이해가 응축돼 있을 뿐 아니라, 수록된 경전이 풍부하고 글자체도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다. 국보 32호인 이 대장경은 1995년 12월8일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록되기도 했다.
그같은 대장경판이 최근 옻칠이 탈색되고 백화현상이 나타나는 데다 뒤틀림과 벌어짐 등으로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한다. 처음 강화도성 서문밖의 대장경판당에서부터 선원사를 거쳐 합천 해인사 등 몇차례 자리를 옮기면서도 700년 넘게 잘 보존돼왔건만. 한데 더 더욱 안타깝고 어이없는 것은 섣부르게 첨단을 자랑하던 현대의 어줍잖은 보존기술이 되레 훼손요인으로 지적받은 사실이다. 30년 전 최고 전문가들이 머리를 짜내 새로 판가(板架) 28동을 세워 분산 보관토록 한 일이 오히려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새 판가를 설치하면서 자연채광 및 통풍공간을 없애버린 탓이라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잘 모르면 차라리 그냥 놔두기나 할 것을…. 그나 저나 그런 식으로 망가진 또 다른 문화재는 없는지 모르겠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선무당
입력 2002-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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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1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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