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여론조사 활동이 활발한 나라는 없을 성싶다. 이미 1824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전 모의투표를 실시, 그 결과를 예상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00년대 들어서는 각 언론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평 있었던 것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의 조사결과였다. 다이제스트지는 전화 자동차등록명부에 기재된 유권자들에게 모의투표 용지를 보내 작성토록 하고 이를 회수하는 방식을 사용, 1916년부터 20년동안 명성을 쌓아왔다.

그러던 다이제스트지의 명성은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신흥 갤럽, 로퍼, 크로슬리 같은 조사기관들이 비례할당법에 의한 과학적 소수 표본조사를 실시한 반면 다이제스트지는 유권자 1천만명에 모의투표 용지를 우송하고 이중 250여만장을 회수했으나 정반대의 부정확한 결과를 내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그러나 여론 조사기법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그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의문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론 조사결과가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진정한 여론을 포착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국 갤럽이 지난 97년 '여론 조사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조사결과가 과연 유용한 것인지에 대한 반응은 유용하다는 긍정적 인식(25%)보다 유용하지 않다(53.1%)는 부정적 인식이 훨씬 많았다. 선거에 관한 여론 조사결과에 관해 유권자들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응답자들이 '솔직하게 응답하지 않기 때문'(66.2%)이라고 한다. 사실 이 결과에 대해서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근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방법으로 여론조사 방법을 동원키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에 관한 여론 조사결과'에서 볼 수 있듯 단일화 후보결정에 진정한 여론이 얼마나 잘 반영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월터 리프만은 비조직적, 비이성적이기 쉬운 여론에 관한 무비판적 신념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했는데…. <성정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