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미국의 부호’라면 으레 자선사업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하긴 그 옛날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등을 보면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록펠러는 말년에 재산 대부분을 시카고대학 록펠러연구소, 일반교육이사회 등에 내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카네기 역시 수많은 재산을 기증, 무료도서관 병원 교회 등을 짓게했고 그밖에 숱한 사회복지시설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
근년에도 못지않은 인물들이 꽤 나왔다. 80년대 말 부다페스트에 유럽중앙대학을 세운데 이어 1994~2000년 사이 ‘열린 프로젝트’에 무려 240억달러나 쏟아부은 퀀텀펀드 회장 조지 소로스, 1999년 사상 최대의 자선재단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 등등…. 그중 빌 게이츠는 얼마 전 무려 528억달러로 추산되는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혀 또 한번 큰 감동을 주었다.
물론 우리 나라 부호들도 갖가지 자선사업에 선뜻 거금을 희사한 이들이 더러 있기는 하다. 그런데도 왠지 우리 사회에선 부자들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는 않은 편이다. 아마도 대부분 부(富)의 축적과정이 불투명한 데다 사용과정도 그다지 정당성을 얻지 못하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과거 수십년 고질화되다시피한 일부 재벌들의 정치권과의 검은 거래, 다시 말해 정경유착에 대한 혐오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그같은 일들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일까. 몇달 전엔 소위 재벌경제인들의 모임이라는 전경련이 사뭇 기막힌 결의를 했었다. “정치권의 정당하지 못한 정치자금 요구에는 결코 응하지 않겠다. 법에 의하지 않은 불투명한 정치자금은 제공하지 않겠다”고.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선언까지 했다는데 우선 놀랐고, 한편으론 오죽 정치자금에 시달렸으면 그랬을까 싶어 무척 딱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지금 은근히 걱정도 된다. 곧 대선이 다가오는데 그들이 과연 그때의 결의를 고민없이 잘 지켜나가고 있을까 하고. 소문엔 서둘러 해외출장을 떠났거나 떠나려는 재벌 총수들도 몇 있다던데. 물론 사업 때문이라지만 워낙 시기가 시기인지라….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은근히 걱정
입력 2002-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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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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