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다. 국어사전에는 김장을 침장(沈藏), 또는 진장(陳藏)이라고 했는데, 배추나 무를 소금물에 가라앉히거나 묵혀서 보관하는 방법을 뜻한다. 대체로 입동(立冬)을 전후해 3~4개월 먹을 김치를 한꺼번에 담그는 것이 김장이다. 김장김치는 '겨울철 반양식'이라 일컬었으니, 그 비중 때문에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것이 입동 무렵의 김장하기이다. 예전에 김장을 하려면 최소한 1박2일은 잡아야 했다. 100포기 이상 되는 배추를 소금물에 절였다가 다음날 소를 만들어 버무려 넣은 다음, 집안의 장정이 앞마당에 파묻어 놓은 김칫독에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그 위를 짚방석으로 잘 여미어 놓기까지 보통 정성으로는 어림없는 일대 행사였다. 그래서 동네 아낙들간의 품앗이는 기본이었다.

김치광에 묻힌 '독'의 개수만으로도 가세(家勢)를 짐작할 수 있었으니, 없는 사람들에 대한 김장 보시(布施)는 예전이나 요즘이나 우리의 미덕이다. 십수년을 독거노인이나 불우이웃들을 위해 김장을 해주는 부녀회의 미담이 올해도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홍길동'으로 불리는 한 독지가가 3년째 안산의 사할린동포촌인 고향마을에 억대의 김장거리와 양념값을 희사해오고 있다는 기사가 화제다. 김장이란 이렇듯 나만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긴 겨울을 나기 위한 '겨울철 반양식의 동장(冬藏)'일 때 그 의미가 더욱 깊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인터넷 여성사이트의 설문조사에 응한 여성 네티즌 5명중 1명(22%)이 김장을 하는 대신 김치를 사먹겠다고 응답했단다. 한 백화점이 대전시 주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는 이보다 심해 50%가 김장을 거부(?)했다고 했다. 연령별로 보니 40대 이상 주부는 81%가 담그겠다고 한 반면 20~30대는 79.1%가 담그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젊은 여성들 대부분이 “김장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외치며 김장하는 집으로 시집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하니, 이제 며느리 보려면 김장도 포기해야 할 세상이 됐는가 싶어 씁쓸하다. 영하 0.5℃의 마술을 부리는 김치냉장고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김치공장이 성업중인 세상이니 김장 거부 현상은 앞으로 더할 것이다. 아쉬운 것은 며느리에게 김장 비법을 전수해줄 손맛마저 유실될까 하는 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