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66)가 감기 때문에 지난 5월13일 은퇴를 시사했다. 며칠 전인 5월8일에도 감기로 공연을 취소해 “뚱보(fat man)는 이제 끝났다”(뉴욕포스트)는 거센 비난을 산 데다가 5월12일에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공연 시작을 불과 50분 앞두고 “감기 때문에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며 펑크를 냈기 때문이다. 은퇴 시사는 “최고 1천875달러(약 230만원)까지 낸 입장객 4천여명에게 직접 나와 사과하라”는 극장측 요청 뒤에 나왔다.
감기는 세계 최고의 목청만을 뭉개버리지 않는다. 지난 세기만 해도 1918년 발생한 최악의 독감으로 10억명이 감염, 1차 세계대전 희생자의 2배에 달하는 2천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1957년, 68년에도 수십만명이 죽어갔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의 몰락 원인이 악성 독감이었다고 하듯이 적어도 한해 수억명이 시달리고 일생 동안 평균 300번은 걸린다는 유사이래 인류를 가장 많이 괴롭혀 온 질병 중 하나가 감기다. 사람뿐이 아니다.
79년엔 북아메리카 바다표범 수백마리가, 89년에 중국 동북부의 말 8천여마리가 독감으로 죽었고 작년엔 중국 푸첸(福建)성의 닭과 오리 1만마리가 폐사했다.
병명만 봐서는 별 게 아닌데도 그렇다. 감기란 '느끼는 기운(感氣)'일 뿐이고 독감도 '독한 느낌(毒感)'일 뿐이다. 영어의 '감기'도 그냥 '추운(cold)' 정도이고 일본인들에게도 '나쁜 바람(風邪)'에 불과하다. 다만 중국 한의학에서 일컫는 '상한(傷寒)'만은 '몸을 상하게 하는 한기'라는 뜻이다. 아무튼 1918년의 그 지독한 '스페인 독감'을 비롯해 93년의 홍콩A형, 95년의 중국A형, 대만A형, 파나마B형, 재작년의 시드니 올림픽 독감과 러시아 독감, 금년 유럽의 '킬러 슈퍼 독감'과 우리나라에 온 파나마A형 등 독감 이름에 '코리아'가 붙지 않은 것만도 '대~한민국' 만세를 불러야 할지 모른다.
국립보건원이 독감 주의보를 발령했다. 감기 환자가 없다는 남극으로 모두가 남부여대(男負女戴), 이민을 갈 수도 없고 그저 조심하는 수밖에 길이 없고 예방하는 수밖에 방책이 없다. <오동환 (논설위원)>오동환>
독감 주의보
입력 2002-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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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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