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결혼정보회사가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미혼남녀 204명에게 배우자로 강남인과 강북인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고 물어본 모양이다. 업체의 조사 목적이야 고객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확대하겠다는 이유일 것이고, 주목할 만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조사결과다. 여성의 70%와 남성의 66%, 전체적으로는 67.6%가 '배우자는 강남에 살아야 한다'고 답변한 것이다.
'결혼은 비슷비슷한 집안간에 해야 좋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일반적인 결혼관이다. 신분을 뛰어넘는 연애나 결혼은 언제든지 비극으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저 유명한 '12가지 노역'에 시달린 것도 따지고 보면 신(神)들의 제왕인 제우스와 인간이었던 알크메네의 하룻밤 춘정(春情)이 빚어낸 비극이다.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로 인해 질투의 화신이 된 여신 '헤라'는 인간 '시앗'의 자식을 저주했다. 그래도 아비라고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불사(不死)의 정기를 넣어주기 위해 헤라가 잠든 사이 몰래 그녀의 젖을 물렸는데, 이 '슈퍼 베이비'가 엄청난 힘으로 젖을 빠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깬 헤라가 바로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그때 분출된 헤라의 젖이 창공에 뿌려져 '은하수(Milky Way)'로 남았다고 하니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레미제라블'의 불행한 여직공 '팡틴느'의 비극도 파리의 대학생 톨로미에스를 연모해 순결을 바친데서 비롯된다. '코제트'를 잉태하고 있었던 그녀를, 요즘으로 치면 강남 사람쯤 되는 '파리지앵' 톨로미에스는 자신의 신분을 찾아 떠난다는 편지 한통으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상류층과 하류층 커플의 상열지사는 으레 하류층의 비련(悲戀)으로 끝나게 마련이었다.
'강남 커플'을 고집하는 강남의 청춘남녀들은 아예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지 않겠다는 합리적인 결혼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까마득히 높은 집값과, 8학군으로 성(城)을 쌓은 강남인들이 이제는 결혼마저 역내(域內)로 제한하려 한다니 조금 심하다 싶다. <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강남(江南) 커플'
입력 2002-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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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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