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義賊)’이니 ‘협도(俠盜)’라는 말이 있듯이 도둑에게서도 배울 점은 있다. 중국 태산 기슭에 9천명의 졸개를 거느렸다는 사상 최대의 도둑 도척(盜甁)이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느냐”는 졸개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했다. “도둑의 사회라고 어찌 도가 없겠느냐. 남의 집 재물을 (용케도) 알아내는 것이 성(聖), 그 위험한 곳에 남 먼저 뛰어드는 것이 용(勇), 추격을 받으면서도 마지막 나오는 것이 의(義), 실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지(智), 훔친 재물을 공평히 나누는 것이 인(仁)이니라” ‘장자(莊子)’에 나오는 그 유명한 도척의 도를 ‘간에 붙고 쓸개에 붙는’ 오늘의 우리 철새 정치인 집단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위험한 곳엔 우물쭈물 가장 나중 뛰어들고 위태하다 싶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가장 먼저 뛰쳐나오다가 넘어질지도 모른다. 도무지 용(勇)과 의(義)는 눈을 씻고 확대경을 든 채 찾아보려 해도 어렵다.
조직폭력 집단 그들에게서도 본받을 점은 있다. 그들 역시 위험한 곳엔 먼저 뛰어드는 용기를, 쫓길 땐 가장 뒤에 붙는 의리를 생명처럼 지키자고 외쳐댄다. 약속을 지키고 의리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행동강령에 철저한 것이다. 그들은 조직을 배반, 이탈할 경우 손가락을 잘리는 등 무서운 보복이 따른다. 그런 조폭 강령을 배신을 뭐 먹듯 하는 오늘의 우리 정치인들에게 적용한다면 또 어떤 꼴이 될 것인가. 손가락이 여섯인 ‘육손이’가 아니라 넷뿐인 ‘사손이’ 투성이 정치판이 되고 말 것이다.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으로 죽어간 숱한 역사 인물의 혼령을 들깨워 그 ‘불사이군’이라는 말 좀 오늘의 현실에 맞게 ‘불사십군(不事十君)’쯤으로 고치자고 할 정치인이 이 땅에 너무나 흔하다. DJ 정권을 창출, 장관을 지내는 등 전리품(戰利品) 혜택을 흠뻑 누려온 어느 중진 인사까지도 하루아침에 당적을 이탈해 적진에 합류하다니! 그런 사람이나 그를 받아들이는 쪽이나 현기증 나는 이퀄(=)이 아닐 수 없다. 의리의 의(義)자, 지조의 지(志)자도 모르는 그런 저런 정치인을 깡그리 인솔해 도척의 ‘의리’ 강의를 듣게 하고 싶다. <오동환 (논설위원)>오동환>
忠臣不事十君?
입력 2002-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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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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