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盜聽)'이란 글자 그대로 '도둑질해 듣기' '훔쳐 듣기'다. 중국어의 '토인'도 '사람 인변에 兪'자와 '口변에 斤'자로 글자 모양은 다르지만 '훔칠 투'자에 '들을 은'자다. '도청'을 뜻하는 영어의 태핑(tapping)도 기분 나쁜 단어다. '도청'이라는 뜻 말고도 외과 의사가 말기 간경화나 간매독, 결핵성복막염 환자의 물동이처럼 팅팅하게 차 오른 복수에다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아 복수를 빼내는 끔찍한 '복수천취(腹水穿取)'를 뜻하기 때문이다. 몰래 엿듣기의 이브스드로핑(eavesdropping) 역시 혐오스런 어휘다. '이브스'는 지붕 처마, '드로핑'은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으로 비온 뒤에 썩은 초가 지붕에서 이마에 떨어지는 싯누런 지지랑물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더욱 기분 구겨지는 것은 89년 9월24일 TV로 방영된 미국 영화 '600만불의 사나이'의 도청 장치 따위다. 수소 융합 연구 중 은퇴한 로시 박사가 연구를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은밀히 밝혀오자 스티브는 그를 모시러 간다. 그러나 스티브보다도 다른 사람이 먼저 와 박사를 데려가려 한다. 스티브는 간신히 박사를 구해내긴 하지만 어떻게 로시 박사의 연구 재개 의사가 누설됐는지에 의문을 품는다. 한데 그 해답은 기상천외하게도 로시 박사 비서 아가씨의 충치 먹은 어금니에 장치한 팥알만한 도청장치가 담고 있었다.
영화가 아닌 실제의 도청 사례는 얼마나 흔한가. 닉슨 미국대통령의 목을 날린 워터게이트 사건 말고도 87년 봄 모스크바 미국 대사관의 8층 신축 건물이 숱한 도청장치 발각으로 몇 차례씩 중단된 사건, 프랑스 리베라시옹지가 93년 3월4일자에 폭로한 엘리제궁의 르몽드지 사건기자 집 전화 도청 사건 등. 최근에도 지난 1월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의 보잉767 전용기 도청장치 발각으로 얼마나 시끄러웠던가.
우리 국정원이 국회의장을 비롯한 야당 정치인의 휴대폰 통화(불가능하다던)까지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온통 나라 안이 떠들썩하다. 인권 침해와 프라이버시 침탈도 문제지만 개인의 '비밀 말살'이야말로 소름끼칠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동환 (논설위원)>오동환>
도청
입력 2002-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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