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상자' 정도가 아니다. 89년 6월 뉴욕의 존 오코너 추기경은 성 패트릭 성당 연설에서 TV를 '전파 쓰레기의 사막'이라고 매도했다. 그런 TV가 '요술 상자' '지혜의 상자'라는 평을 넘어 대통령을 낳는 '모체(母體) 상자'로 위상이 승격한 지 오래다.

스웨터 차림의 구수한 땅콩장수 카터가 76년 등장, 루스벨트의 노변정담(爐邊情談)을 연상케 하는 친근감으로 포드를 누르고 '대통령 테이프'를 끊는 카터(cutter)가 되게 한 건 TV 덕이었다. 허여멀건 허우대에 부드러운 언변을 연기로 포장한 배우 출신 레이건을 별 진통 없이 대통령으로 낳은 것도 TV였다. 한데 대통령 후보 TV 토론의 시작이자 압권은 역시 60년 9월의 케네디와 닉슨이었다. 웅변가 닉슨을 상대로 무모하게도 토론을 제의했지만 결국은 눌변의 진실 호소가 웅변을 누른 대표적인 경우가 돼버렸다.

미국 대통령 후보의 TV 토론을 디베이트(debate)라고 한다. '디스커션'보다는 격식을 갖춘 점잖은 입씨름이다. 그러나 '토론(討論)'의 뜻은 다툼, 시비의 아규먼트(argument)에 가깝다. '토(討)'가 '토벌'이라고 할 때의 '칠 토' '공격할 토'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잖은 입씨름이 아닌 격렬한 입 싸움이고 세 치(약 9㎝) 혀로 싸우는 '혀 전쟁'이 즉 토론이다. 그러므로 뛰어난 입담과 상대가 아무리 모욕적인 발언을 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배포를 겸비한 후보 쪽이 일단은 유리하다. 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 제한과 정해진 순서가 시청의 흥미를 반감해버린다. 흥미야 그런 제한이 덜한 일반 심야토론과 난상토론, 즉 격한 감정의 디스퓨트(dispute)급 토론이다. 한데 그런 토론은 흔히 너무 격렬하다 못해 인신공격→욕설→주먹다짐까지 벌이기 쉽다. 91년 7월16일 호주의 한 TV 생방송에서는 육박전까지 벌였고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리비에라는 출연자의 주먹에 코뼈가 부러졌다.

92년 10월 부시, 클린턴, 페로의 삼파전을 연상케 하는 세 대통령 후보의 토론을 지켜본 시청자의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깝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가의 여부는 가려져야 할 것이다. <오동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