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대한 찬상(讚賞)은 시를 비롯한 문학 작품에 흔하다. 청천(聽川) 김진섭(金晉燮)은 '백설부(白雪賦)'에서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듯하고 눈 오는 날에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이는 통행인은 보지 못했다'고 썼고 방랑시인 김삿갓은 '펄펄 바람에 흩날리는 눈송이는 3월 나비와 같고 쌓인 눈 밟을 때 나는 소리는 6월 개구리 우는 소리 같다'고 읊었다. 광해군 때의 신동 박엽(朴燁)이 여덟 살 때 지었다는 시는 어떤가. 함박눈을 가리켜 '손바닥 같기도 하고 자리 같기도 하다(如手復如席)'고 했으니 기발하다 할까 천진난만한 과장법이라 할까.
눈처럼 포근하고 고결한 것은 없으리라. 자고로 미인의 피부를 설부(雪膚)니 설기(雪肌)라고 했고 미인 중에서도 '극히 건강한 처녀의 피부와 같다'는게 노신(魯迅)의 관점이다. 심산 벽촌의 백설은 더욱 고결하다. 초가의 장독대며 사립문, 텃밭의 짚가리와 옥수수 타래, 동구 밖 숲 속 오솔길의 동화 속 같은 설경이라니! 그러나 도시의 검은 아스팔트길에 내리자마자 녹아버리는 눈은 무참하고도 잔혹하다. 더구나 그게 대기 오염에 의한 산성(酸性) 눈이라면 조사(弔辭)라도 한 자락 뿌려주고 싶다. 서양 사람들은 쉽게 녹는 눈을 죽음의 상징으로, 차디차다 해서 여성의 불감증으로, 일색이다 해서 맹목으로 여기지 않던가.
폭설과 설화(雪禍)도 어렵고 괴롭다. '처음에는 은하수를 거꾸로 쏟는가 했더니/ 어느새 산봉우리가 눌리어 꺾일까 겁이 나네' 고려의 학자 이제현(李齊賢)이 읊었던 그런 폭설은 절대사절이다. 미국 버팔로에 5일 동안 185㎝나 내려 작년 12월28일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던 그런 폭설도 두렵지만 사람 잡는 설화는 더욱 무섭다. 지난 1월4일 일본 군마(群馬)현의 한 초등학생은 지붕에 쌓였다가 쏟아지는 눈에 깔려 숨졌고 3월10일 야마가타(山形)현의 한 회사원은 산사태에 묻혀버렸다.
전국적인 강설에다 일부 산간지방엔 금년 첫 대설 경보까지 내려졌다. 대선 열기와 여중생 사망 시위의 분노를 다소라도 삭여줄 서설(瑞雪)은 좋다만 폭설만은 사양이다. <吳東煥 (논설위원)>吳東煥>
첫 대설 경보
입력 2002-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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