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諡號)란 임금이 현신(賢臣)이나 유현(儒賢)들이 죽은 뒤에 생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내린 이름이다. 또 선왕(先王)의 공덕을 기리어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왜란(倭亂)극복의 명장 이순신의 시호는 충무(忠武)이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생전의 일생과 잘 어울린다. 임금에게 시호를 올릴 때는 증시(贈諡) 절차가 엄중했다. 조선왕조는 별도로 시호도감(諡號都監)을 설치할 정도였다. 조선시대 왕들의 시호는 조(祖)와 종(宗)으로 끝나는데 조는 사직을 열거나 보존한 임금에게, 종은 사직을 유지, 발전시킨 왕들에게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반도 왕조 역사중에 왕들의 시호가 충(忠)자 돌림으로 이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몽골이 세운 원(元)제국의 지배를 받던 13세기 고려의 국난시기다. 충렬왕(忠烈王) 충선왕(忠宣王) 충숙왕(忠肅王) 충혜왕(忠惠王) 충목왕(忠穆王) 충정왕(忠定王) 등 원나라는 고려왕들이 죽으면 몽골에 충성을 다했다는 뜻으로, 또 보위를 이은 신왕에게는 충성을 다하라는 의미로 왕이 신하에게나 내리는 '충'자 시호를 내린 것이다. 충자 돌림 고려왕들은 세자 시절 인질로서 원의 수도 연경에 머물러야 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원 황실의 공주들에게 장가를 들었다. '충'자 돌림 시호의 효시인 충렬왕의 경우 왕위를 잇고자 귀국할 때 변발에 몽골옷차림이어서 백성들을 놀라게 했을 정도다. 공민왕이 변발을 버릴 때까지 100년동안 고려는 사실상 국호만 있었던 셈이다.

부시 미국대통령의 일방주의가 세계인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세계가 미국의 영도력을 요구하고 있다”며 개척시대 서부를 질주했던 카우보이 처럼, 지구촌 우방국들에게 동맹을 빙자한 '충'을 강요하고 있으니 그렇다. 그것도 자유, 정의, 평등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으니 국제사회에서 부시(Bush)대통령은 성가신 덤불(bush)같은 존재가 됐다. 미국에 대한 세계인의 비우호 여론도 '소음'으로 치부하는 부시 대통령에게 시호를 올린다면 '부시(不時)' 정도가 어떨까. 21세기에 동맹국의 '충'을 요구하는 그의 세계운영 전략이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