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주한 미군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대장은 유명한 ‘들쥐론’으로 한국민의 미움을 샀고, 그 때문에도 우리 기억에 오래 오래 남는 인물이다. 그때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 아마도 그로선 ‘12·12사태’ 이후 권력실세로 급부상한 신군부에 숱한 인물들이 다투어 줄서기 하던 꼴불견을 비아냥댄 것이겠지만, 우리 국민성을 싸잡아 들쥐 떼에 비유한 것은 여간 큰 모욕이 아니었다. 의식있는 이들이 크게 분노했고, 하마터면 심각한 반미감정으로까지 번질 뻔했던 기억이 새롭다.
같은 시기 위컴 만큼이나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미국인이 또 한 사람 있다. 1978년 7월부터 1981년 6월까지 주한 미국대사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피살, 신군부 등장과 광주민주화운동 등 이른바 한국 현대사의 최대 격변기를 한국에서 보냈다. 덕분에 그는 위컴과 더불어 신군부 등장 등에 대한 미국의 처신에 관한 의문(묵인 또는 개입정도?)을 풀어줄 수 있는 인물로 주목 받아왔다. 어쩌면 그로선 무척 곤혹스런 입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그는 2년 전 펴낸 회고록 ‘폭넓은 관여, 제한적인 영향력(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에서 이렇게 피력했다.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와 대북정책의 변경, 헌법체제 옹호 등의 카드를 써 신군부를 견제하려 했지만, 결국 안보상 우려로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또 다음과 같은 주장도 펴왔다. “신군부의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에 미국은 공모자이자 무력했다는 비난이 있으나, ‘공모’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무력했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맞다.”
어느 만큼 진실이 담겼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물을 수도 없게 됐다. 며칠 전 급성백혈병으로 타계한 것이다. 원했든 원치않았든 우리 국민의 주목을 받아왔던 글라이스틴. 어쩌면 하고싶었던 말이 퍽이나 많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명복을 빈다. <박건영(논설위원)>박건영(논설위원)>
명복을 빈다
입력 2002-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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