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든 무슨 선거든 공약 남발엔 첫째 부도 책임이 없다. 둘째 그 어떤 법에 저촉될 염려도 없다. 셋째 '공약 위반 죄'나 '공약(空約) 예약 죄' 같은 게 있어 덜커덕 걸려들 리도 없다. 넷째 돈 한 푼 안들이고 한껏 생색 잔치를 베풀 수 있다. 다섯째 수백 가지 공약이 허공의 쓰레기로 사라져도 쓰레기 수거비 한 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맘놓고 정신 놓고 대선 공약을 남발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공약 위반 죄' 같은 걸 신설하면 어떨까.

공약 남발을 '주작부언(做作浮言)'이라 한다. 터무니없이 '뜬 소리' 즉 헛소리를 지어낸다는 뜻이다. 또 실천도 하지 못할 것을 떠벌려 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뜻으로 '대언불참'이란 말도 있다. '참'은 '斬' 밑에 '心'이 붙는 '부끄러울 참'자다. 한데 그 대언불참의 대표적인 주자들이 바로 '시냇물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공약하는 정치가'라는 게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의 말이다.

대언불참, '식언(食言)의 대가'라면 히틀러부터 꼽힌다. 그는 파펜(Papen) 정부에 협조하겠다고 하고서도 그 정부에 대항해 싸웠고 뮤니크(뮌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면 자살하겠다고 호언하고서도 자살하지 않았다. 우리 대통령들의 식언 사례만 해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92년 대선 때 3당이 내건 핵심 공약 실천비만도 무려 150조원이 든다는 게 전경련의 분석이었다. 어느 후보는 3년 내에 300억달러의 무역 수지 흑자에다 아파트를 반값에 공급하겠다고 했고 어느 후보는 조선왕조 부활과 국회의원 폐지 등 기상천외한 공약을 하기도 했다.

말도 안되는 공약까지 남발하느니 차라리 보드카 값 인하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91년 러시아 대선에서 옐친과 리슈코프에 이어 3위를 차지했던 지리노프스키가 가상하다 할까. 꾀로 남을 속이는 게 사기(詐欺)다. 지키지 못하는 대선 공약도 물론 잔꾀로 속이는 건 아닐지라도 국민을 속이는 건 속이는 것이고 사기는 사기다. 또 한 분의 '위대한 대선 공약(空約)자'가 나오지 않기를 빈다. <오동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