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한길에//맨발로 달리는/신문팔이 아이//매서운 겨울바람/뒤쫓아 달립니다.//“신문, 신문, 신문삽쇼.”//아이가 소리지르면/바람도 소리칩니다.//춥지 않습니다./배도 고프지 않습니다.//싸움이 끝나는 날//일선 가신 아버지가/돌아오실 때까지//그 아이는/견디는 아입니다. 〈이종택님의 동시 ‘신문팔이 아이’〉

그때는 정말 그랬다. 비록 전쟁(6·25)통에 폐허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너도 나도 헐벗고 굶주렸지만, 슬픔 중에도 꿈은 잃지않고 가꾸어나갔다. 이 시에 나오는 신문팔이 아이처럼 전선에서 싸우는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또 전쟁이 끝나면 헤어진 가족을 되찾을 수 있고, 어떻게든 폐허를 딛고 새삶을 꾸릴 수 있다는 기대와 의지가 있었기에. 그래서 추운 것도 몰랐고, 배고품도 견딜 수 있었다.

어디 그때 뿐이랴. 지금의 어른들이 아이 시절 찌든 가난을 미처 벗지 못했으나, 그래도 누군가 “이담에 커서 무엇이 되고싶니”하고 물으면 신이 나서 이렇게들 대답했다. “대통령이요, 군인이요, 경찰관이요, 비행기 조종사요, 마도로스요, 의사요, 선생님이요…”라고. 직업의 가짓수가 몇 없다보니 다소 단순하긴 했어도 나름대로 열심히들 미래의 꿈을 펼쳐보였다.

얼마 전 한국교육개발원이 도시 저소득층 초·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무려 30.6%나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응답했다 한다. 모든 게 아름답고 신기하게 보이는 청소년기는 한창 희망에 부풀 나이라고들 하던데. 저소득층인 만큼 가난에서 오는 좌절감일까. 그렇다면 최근 “물고기처럼 자유스럽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초등학생의 경우는 또 어떻게 설명이 될까. 그리고 전쟁의 폐허위에서, 찌든 가난 속에서도 꿈을 가꾸었던 지금의 어른들은….

어린이는 “꿈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꿈이 있기에 생기와 웃음이 있고, 그 꿈을 키우면서 성숙하고 발전한다고들 하던데…. 누가 이 아이들에게서 꿈과 웃음을 앗아갔을까. 어른된 처지에서 염치는 없지만, 부질없는줄 번연히 알면서도 멋쩍게 물어본다.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