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금년의 한자'는 '돌아올 귀(歸)'자다. 북한에 납치됐던 5인이 24년만에 귀국했고 거품 이전 수준으로 돌아온 경제와 옛날 노래가 다시 유행하는 회귀현상 등에 의한 결정이다. '歸' 다음은 北→拉→愛→蹴 순이다. '北'은 북한, '拉'은 납치, '愛'는 출생한 황실 공주 이름, '蹴'은 월드컵 축구다. 한데 대한민국 '금년의 한자'라면 어떤 글자가 될 것인가. 단연 핵(核)을 비롯해 선거의 選→게이트의 門→도청의 盜→월드컵의 '蹴'쯤이 아닐까.

핵전쟁 가능성엔 '설마'가 없다. 13일자 AP통신은 “북한의 핵 개발 재개 선언은 한국과 미국이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최악의 시나리오(worst-case scenario)”라고 했고 AFP통신은 “북한이 대통령 선거 중인 한국에 폭탄을 투하해 후보들이 낙진(落塵)을 막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고 타전했다. 일본의 요미우리(讀賣)신문도 13일자 사설에서 “북한이 핵 병기에 전용 가능한 병기급 플루토늄을 용이하게 생산할 수 있는 흑연감속로(黑鉛減速爐)를 재가동한다면 10년 이내에 연간 100발 이상의 핵병기를 양산할 수 있다”고 썼고 14일자 아사히(朝日)신문 역시 “미국과 북한이 '지와지와' 위험 수역에 들고 있다”는 제목을 달았다. '지와지와'란 마치 홍수 때의 한강 수위처럼 싸목싸목, 천천히 조금씩 차오르는 모양이다.

94년 당시도 위기였다. “북한 핵 관련 시설 폭격과 함께 수십만명을 동원하는 전쟁 계획을 수립했었다”는 게 지난 10월20일자 워싱턴포스트지의 페리 전 국방장관 기고문 요지였다. 북한의 핵 개발 의혹만으로도 94년 상반기를 한반도 전쟁 준비로 보냈다는 것이다. 미국이 지난 2월28일 공개한 녹화 테이프 내용도 “베트남전 때 핵 사용을 검토했었다”는 닉슨의 대화였다.

핵전쟁은 인류의 종말만 부르는 게 아니다. 핵전의 연기와 먼지 등이 대기권을 뒤덮어 수개월 또는 몇 년 동안 어둠이 덮이고 기온이 20∼30도나 곤두박질쳐 생태계 파괴는 물론 농사조차 불가능하다는 게 이른바 '핵겨울'이라는 것이다. 이 음산한 회색 겨울이 제발 '설마'로만 끝나는 '핵겨울'이 되기를 바란다. <오동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