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민주항쟁은 마침내 무소불위 신군부정권의 항복선언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6·29선언이 그것이다. 그해 6월29일 아침 서울 관훈동 민정당사 9층 회의실에 나타난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은 긴장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각계각층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여 이 나라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정부 역시 국민들로부터 슬기와 용기와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역사와 국민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첫째 여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이로써 1972년 소위 10월 유신으로 빼앗겼던 대통령 직접선거권은 장장 15년만에 국민의 힘으로 되찾게 된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치른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마치 모처럼 참정권을 되돌려받은 기쁨을 한껏 만끽하듯 무려 89.2%라는 사뭇 높은 투표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런 기쁨과 감회도 세월이 가면서 차츰 식어간 것일까. 5년 뒤에 치른 14대 대선투표에선 그때보다 자그마치 10% 가까이나 떨어진 81.9%에 그쳤고, 또다시 5년이 지나 치른 15대 대선에선 그보다도 못한 80.7%에 머물었다. 이런 추세라면 당장 내일로 다가온 16대 대선에선 또 얼마나 투표율이 떨어질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투표 불참은 곧 나라의 장래를 결정하는 소중한 권리의 포기라든지, 국민으로서의 책무를 회피하는 일이라는 등 교과서적인 말을 모를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여겨진다. 오죽하면 2천500년 전 고대 아테네에선 정치적 무관심자에게서 시민권까지 박탈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 아테네 민주정의 황금기를 연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정치적 방관자를 힐난했다고도 한다. “우리는 사람이 개인적인 일뿐 아니라 공적인 일에도 관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무관심한 자로서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설마 자진해서 쓸모없는 자로 전락하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은데, 글쎄….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