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 대통령 선거야말로 가관(可觀)이다. 후보 수효부터가 그렇다. 93년 8월의 나이지리아 대통령 선거엔 무려 250명이나 출마했다. 중도에 포기한 후보도 있긴 했지만 마치 수백명이 참가한 마라톤대회를 연상케 했다. 오랜 군정 끝의 첫 민간 대통령 선거이긴 했지만 도대체 대통령 자리라는 게 얼마나 군침이 돌고 입맛이 당겼길래 250명이나 대거 몰려들었던 것일까.
23명이나 출마한 아이티의 87년 11월 대통령 선거는 더욱 가관이었다. 놀랍게도 19세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세계 기록을 세운 장 클로드 뒤발리에 부자의 30년 세습 독재 끝에 치러진 선거도 선거였지만 인구 660만의 95%가 문맹이었다. 그래서 투표 용지엔 마치 범인 수배 얼굴 같은 23명 후보의 사진을 싣는 것도 모자라 소, 돼지, 개 등 상징 가축 그림을 기호마다 그려 넣었다. 지난 5월의 말리 대통령 선거에도 24명이나 출마했다. 하기야 선진국인 프랑스의 지난 4월 대통령 선거에도 17명이나 출마하지 않았던가.
선거 분위기도 엉망이었다. 아이티엔 폭력이 난무해 선관위 건물이 방화로 불타버리고 대통령 후보와 선관위 경호원 등 무려 500여명이 살해당했다. 짐바브웨 역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작년 11월 한 달 동안만도 6건의 정치적 살인과 115건의 고문이 자행됐다.
그러니 이번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얼마나 선진형인가. 첫째, 단거리 경주 선수처럼 7명→6명의 알맞은 후보가 나왔다. 둘째, 지난 10월의 유고연방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 선거처럼 투표율이 45·46%에 그치는 바람에 무효(유효는 50% 이상)가 돼버려 재선거를 치를 우려도 없다. 셋째, 사담 후세인의 100% 득표율 따위를 흉내낼 창피스런 후보가 나올 염려도 없다. 넷째, 대통령 직접선거의 경제 손실은 워낙 엄청난 것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법정 선거 비용 341억원에도 못미칠 것이라고 한다. 다섯째,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금권·관권 시비와 고발이 줄어든 가장 깨끗한 선거라지 않던가. 21세기의 첫 대통령 선거가 드디어 오늘이다. 이제 일곱→여섯 잘난 후보 중에 '보다 잘난' 한 후보만 현명하게 골라잡는 순서만 남았다. <오동환 (논설위원)>오동환>
대통령 선거
입력 2002-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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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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