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인 1948년 미국 대선에서 시카고의 한 신문이 토마스 듀이 공화당 후보가 트루먼 대통령을 꺾고 당선됐다는 오보(誤報)를 낸 적이 있다. 여론조사를 과신한 나머지 일어난 중대한 잘못이었다. 당시 트루먼이 그 신문을 들고 웃고 있던 사진이 걸작으로 남아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에도 이런 일은 있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도 '슬레이트'라는 잡지의 웹사이트가 출구조사 결과를 토대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를 19% 포인트 차로 따돌리고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론조사의 '헛발질'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96년 15대 총선 출구조사에서 신한국당의 압승을 예측했다가 과반수 의석미달로 나타나면서 여론조사기관이 망신을 당했다. 2000년 16대 총선 출구조사에서도 예측을 깨고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 결과를 보노라면 인터넷이나 미디어 선거가 자리잡아 가는데다 여론조사 방법도 과학화돼 여론조사가 정치판단의 보조수단에서 벗어나 현실정치를 직접 결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느낌이다. 우리 정치에서도 여론조사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1987년 대선에서 본격 도입된 여론조사는 당시 한국갤럽이 선거결과 예측조사를 실시해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실제 결과와 2.2% 포인트 차이로 맞췄다. 그 때는 선거여론조사가 불법이었지만 선거법 개정으로 여론조사가 가능해진 92년 대선부터 여론조사는 활성화됐다. 선거 두달여를 앞두고 6차례에 걸쳐 후보자별 지지도 변화 추이를 조사한 결과 줄곧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민주당 김대중 후보를 6~9% 포인트 정도 리드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 결과도 그렇게 됐다. 노무현 당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여론조사가 정치권의 신뢰를 얻는 결정적인 고비가 된 셈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투표가 종료된 직후인 오후 6시 TV 방송 3사는 일제히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5~2.3% 포인트의 근소한 차로 노무현 당선자가 앞설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개표도 시작하기 전에 당선자의 예측이 나왔고 결과도 거의 적중했다. 밤새 개표를 기다리는 스릴은 없어졌지만 민주정치는 여론정치라는 말이 실감난다. <李俊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