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짧은 시간과 영원한 시간은 소름 끼치도록 잔인하고도 지독한 극(極)과 극이다. 영원한 시간을 '겁(劫)'이라고 한다. 하늘에 사는 천인(天人)이 길이가 사방 40리(약 16㎞)나 되는 바위를 100년에 한 번씩 얇은 옷자락으로 스쳐 그 바위가 모두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 '겁'이고 사방 40리나 되는 크나큰 성에 겨자 알을 가득 채워두고 100년에 한 알씩 모두 집어내도 끝나지 않는 시간이 영겁이라고 할 때의 그 '겁'이다. 또 '겁'의 100배가 백겁, 1천배가 천겁이고 세상의 시작∼끝의 시간이 '대겁(大劫)'이다.

반대로 가장 짧은 시간은 '찰나(刹那)'다. 손끝 한 번 퉁기는 시간(彈指頃)이 찰나다. 눈 한 번 깜빡할 시간은 잠깐(暫間), 잠시, 순간, 순각(瞬刻), 전순(轉瞬), 순식간, 별안간, 삽시간, 돌차간, 호홀지간(毫忽之間)이다. 올림픽 100m 결승 때 켜 드는 그 스톱워치로 잴 수 있는 100분의 1초가 그런 시간이다. 그러나 가장 짧은 시간은 상상으로나 가능할 10억분의 1초인 나노(nano)와 1조분의 1초인 피코(pico)다.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울리면 가장 짧은 시간들의 산탄(散彈)에 쫓기는 삶을 뚫어져라 생각한다. 영겁에 비하면 찰나도 못되는 인생이 빠르기는 또 얼마나 빠른가. 누가 황소 꼬리에 불을 붙여봤길래 세월이 '꼬리에 불붙은 황소처럼 내닫는다'고 하는가. 빠른 세월을 날아가는 화살에 비유하기도 한다. 50대→60대→70대 나이가 들수록 올라탄 시간의 속도감은 더하단다. 내릴 수도 없는 이 아찔한 삶의 속도감을 어찌하랴. 보다 압축되고 정제된 고밀도의 상황적 시간, 공간적 시간인 이른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 보람차고 위대한 가치를 창조하는 그런 시간으로 살 수밖에 없으리라.

뉴 이어 이브, 제야의 종소리 한 번에 포도 한 알씩을 따먹으며 새해 소망을 빈다는 스페인 사람들처럼 이 제야를 견디기엔 우리 목숨마다 주어진 시간들이 너무나 침중(沈重)하고 지엄하지 않은가. 평화의 상징인 양의 해 내년은 우리 겨레의 고뇌와 회한(悔恨)을 뛰어넘는 환희와 감격의 한 해가 되기를 빈다. <오동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