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서양인이 처음 그렸다는 ‘한국인 상상도’를 어느 책에선가 본 적이 있다. 부부 모습이었는데 실로 가관이었다. 남녀 모두 옷 대신 굵은 줄무늬가 진 천으로 아무렇게나 몸을 둘둘 감고 있었고, 그나마 여자는 가슴을 모두 드러낸 반라(半裸)였다. 여자 머리 위엔 삼지창처럼 삐죽삐죽한 게 장식으로 얹혀 있기도 했다. 언뜻 서부영화에 자주 나오는 인디언과 너무도 흡사해 보였다.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에서 옮겨실은 것이라 했다.
사실 100여년 전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전반적으로 무기력하고 나태한 미개인이었다 한다. 오랜 쇄국 탓에 그들이 뽐내던 소위 근대화에 서툰 게 미개인처럼 보였을 것이고, 대체로 가난하면서도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이 되레 무기력하고 게으르게 비쳐졌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아마도 한국전쟁으로 그 절정을 이루게되지 않았나 싶다. 초토화된 산하, 전쟁이 가져다준 공포와 궁핍에 시달리는 피란민들의 모습이 결코 좋게 보였을 리 없었으리라.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모두 추한 거지이거나 짐승우리 같은 움막에 사는 문명화되지 못한 미개인에 불과하다”고 말하던 참전 미군병사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쇄국을 고집하지도 않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도 아니다. IMF를 겪었지만 여전히 세계 11위의 경제국이다. 나름대로 빼어난 문화 예술을 자부하기도 한다. 휴대전화 보유율과 초고속 인터넷 접속률 등이 가장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한번 잘못 새겨진 이미지는 좀처럼 씻겨지기 어려운 모양이다. 여전히 한국이라면 비하부터 하려드는 서구인들이 적지않아 우리를 당혹케 한다. 20여년 전 주한 미군사령관의 ‘들쥐론’이나 요즘 한창 논란을 빚는 영화 ‘007 어나더데이’ 등도 다 그런데서 비롯된 망발이다.
진정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뿌리깊은 백인우월주의가 빚는 오만인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어쩌면 옹고집 같기도 하고. 이유야 어떻든 그들이 즐겨부르는 ‘세계는 하나(We are the world)’만 마냥 겉돌게 생겼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진정 몰라서일까
입력 2003-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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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0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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