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03년 1월12일 밤, 우리나라 사람 102명(남자 56, 여자 21, 어린이 13, 유아 12명)이 낯선 미국령 하와이의 호놀룰루에 도착, 13일 새벽 하와이 땅을 밟았다. 인천항을 떠나 일본을 거쳐 열흘간의 긴 항해 끝에 미지의 세계에 무작정 발을 디딘 것이다. 1620년 청교도 등 102명이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본토에 내렸던 것처럼. 이로써 한국인들의 이민의 역사가 시작된다. 100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그 이민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사탕수수밭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씩 중노동을 하면서 받은 불과 60센트의 하루 품삯 가운데 30%를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은 애국자들이었다. 새로운 개척의 역사를 열어준 것 말고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물질로, 정신적으로 성원을 보낸 이들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2차대전, 6·25 한국전쟁 등 암울했던 조국의 현실을 머나먼 이국 땅에서 지켜봐야 했기에 더욱 마음 아픈 그들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틈도 없이 사탕수수밭 땡볕에서 노동한 남자들, 남편될 사람의 사진만을 달랑 든 채로 하와이를 찾은 '사진 신부'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미군을 따라 나선 이른바 '평화부인'들. 그러나 모두가 교육열 높고,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한민족들이었다. 그 결과 아시아계에서 최초로 한인 하와이 연방법원 판사와 하와이섬 시장, 경찰국장, 변호사 등을 대거 배출해 위상을 높였다. 인천에는 대학도 세웠다. 교민회가 현지 기독학원 부지를 팔아 기금을 한국에 보내면서 1954년 인하(仁荷)공과대학이 설립되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이민 출발지인 '인천'의 '인'자와 하와이의 '하'자를 따 인하대학교로 이름지은 것이다.
12~13일 사이 한국과 미국 현지에서는 100주년 기념행사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불과 102명으로 하와이에 첫 발을 디딘 미국이민. 현재 미국 국적 취득자가 107만명이라니 꼭 100년만에 약 1만배가 늘었다. 청교도 만큼이나 고생했고 한민족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떨치도록 문을 열어준 개척자들이라는 생각이다.
〈李俊九·논설위원〉
미국 이민 100주년
입력 2003-01-10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1-10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