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죽음의 독배를 마신 후에도 ‘빚진 닭 한 마리’를 걱정했다는 이야기엔 ‘빚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갚아야 한다’는 소박한 교훈이 담겨 있다. 또한 ‘빚을 제때 갚지 못해 하마터면 살 한 파운드를 떼어내 목숨을 잃을 뻔 했다’는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는 빚을 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18세기 미국의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두번째 죄악은 거짓말이요, 첫번째 죄악은 빚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빚이라도 허생(許生)의 경우에 이르면 사뭇 양상이 달라진다. ‘하루 세끼 피죽도 못끓일 만큼 가난한 선비 허생이 배짱 좋고 운 좋게도 장안의 이름난 갑부에게서 자그마치 10만금이라는 거금을 빌린다. 그리고 이를 밑천으로 장사를 해 큰 돈을 번뒤, 원금을 두배로 갚고도 거액이 남아 수많은 극빈자들을 도와준다.’ 이쯤되면 빚을 진다는 게 반드시 무섭고 나쁜 일만은 아니다. 어쩌면 장롱 밑바닥에서 썩어날 돈을 끄집어내 크게 활용한 셈이니 되레 권장해야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경우 빚이란 분명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된다.
몇달 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신용평가기관 모건 스탠리사가 자못 의미심장한 경고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의 가계빚에 신용 버블(거품)이 있으며, 이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조만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계대출 비중이 최고 수준에 달할 수 있다”고. 굳이 이런 경고가 아니라도 지금 우리의 가계빚은 분명 심상찮은 수준에 와 있다. 총액이 자그마치 474조원에 달해 가구당 평균 3천만원에 육박했다. 이는 IMF 한파가 한창 몰아닥쳤던 지난 1997년 말의 211조원 보다도 배가 훨씬 넘는 액수라 한다.
그런데도 경제에 활력이 붙었다는 말 보다는 갈수록 침체된다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신용불량자가 급증, 그 구제책을 고민하기도 한다. 분명 허생 식 ‘경제활력의 빚’은 아닌듯 싶다. 무분별한 외채 증가는 혹독한 IMF 한파를 몰아왔었다. 그렇다면 무분별한 가계빚 증가는….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빚…
입력 2003-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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