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유난히도 자기네 언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그 나라는 이미 지난 1994년 TV와 라디오는 물론 학교와 직장, 심지어 광고에까지도 모국어를 사용케 하는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법’을 만들어 시행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법엔 ‘제품, 용역의 표시, 사용법, 규격 설명, 청구서와 영수증 등에 프랑스어 사용은 의무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고도 한다.

반면 일본은 소위 세계화시대라며 외국어 사용에 자못 관대했었다. 심지어 지난 2000년 1월엔 ‘21세기 일본의 구상’이란 국가전략기획서를 통해 ‘영어의 제2공용어화’를 내세우기도 했었다. 인터넷 등을 통한 국제화 정보화로 영어가 이제 국제통용어로 된 이상 이를 국민의 실용어로 삼아야만 정보문화시대에 적응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였다. 그후 영어교육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여 제법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던 일본도 지금은 흔들리는 자국어에 사뭇 위기를 느끼게 된 모양이다. 그사이 부쩍 늘어난 외국어 범람에 모국어인 일본어가 무척 혼란스러워졌다고 온통 법석이다. 그래서 지난 해엔 문부성에 서둘러 외국어 남용에 제동을 걸 위원회를 설치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외국어 및 외래어를 일본어로 갈아치운 사례집을 작성, 배포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서점가엔 ‘소리내어 읽어보는 아름다운 일본어’ 등 전통적인 일본어 감각을 되살리는 갖가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국어를 지키기 위해 꽤나 분주한 모습들이다.

외국어 범람이라면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심각하게 겪어오는 현상이다. 오죽하면 지난 2000년 8·15 이산가족 상봉 때 허웅 한글학회 회장이 북한의 한글학 권위자 류열씨를 만나기 직전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

“남한에선 웬 외국말을 그렇게 많이 쓰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올바른 국어생활 등을 위해 한글의 기본원칙과 어문규범 준수 규정 등을 담은 ‘국어기본법’ 제정을 검토키로 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무척 반갑고 또 기대가 크다. 뒤늦게나마 그렇게라도 해야하는 현실이 다소 안타깝기는 하지만.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