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일이다. 중국의 내로라하는 몇몇 부호들이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에 강력히 항의했다. “왜 자신들을 100대 갑부로 선정했느냐”는 거였다. 어떤 부호들은 “아주 기분 나쁘다. 배후가 의심스럽다”고 했고, 또 어느 부호는 “자산 액수가 최소한 8배나 부풀려졌다”고 격노하기도 했다. 돈 좀 지녔다 하면 부풀려 과시하기 바쁜 이들만 보아와서일까, 참 겸손한 부자들도 다 있다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속내를 알게 됐을 땐 절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돈 많은 게 세상에 알려지면 세금 추적을 받기 때문’이었다나. 하기야 부자든 누구든 세금 좋아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긴 하다.

그런데 요즘 미국서 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법 이름깨나 알려진 갑부들이 앞장서서 ‘상속세 폐지’반대 청원운동을 맹렬히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엔 록펠러 가(家) 및 루즈벨트 가 사람들, 영화배우 폴 뉴먼, 언론재벌 테드 터너, 국제투자가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윌리엄 H 게이츠 2세(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부친) 등 소위 유명 갑부들은 거의 다 포함돼 있다.

그들의 기본 인식은 상속세가 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하고 부(富)를 상속받은 사람들의 ‘귀족 계급화’를 막는 수단으로 보는 데 있다고 한다. 그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에 유익하다고 볼 수 없다. 상속세 폐지는 이런 경향을 더욱 부채질 할 것이다.” 또 이런 말도 덧붙인다. “세금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유쾌하지 못한 현실이지만 세금이나 죽음을 폐지할 수는 없다.”
중국 부호들이나 탈세에 여념이 없는 세상의 많은 갑부들,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자못 궁금하다. 부자들이 다 그들만 같다면 세상 참 살맛 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에겐 정말 다른 속셈이 전혀 없는 것일까. 차라리 중국 부호들이 솔직한 건 아니었을까. 하긴 이런 의심부터가 어쩔 수 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인 탓인지도 모르지만. 그나 저나 요즘 우리 나라도 상속세 문제로 꽤 말이 많은가 보던데.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