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학당은 한국 근대 여성교육의 뿌리이다. 개화기 척박했던 여성교육에 미국 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턴이 뿌린 작은 씨앗이었지만 117년의 역사를 거치는동안 남녀평등과 여권신장을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하는 등 거목으로 성장했다. 당시는 10대에 결혼하는 조혼(早婚)의 풍습이 있던 사회여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집에 다니러 갈라치면 부모에게 잡혀 학업을 그만 두는 사례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이화학당은 관행적으로 결혼금지가 이뤄졌고 1945년 교칙에 명문화됐다고 한다. '결혼한 여성은 입학이나 편입을 할 수 없으며, 재학중 결혼하면 제적당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장상 전 총장 이후 기혼의 총장이 금혼을 강요하는 것을 문제삼기도 했다. 조직의 특성상 사관학교에서나 가능한 규정이지, 일반대학에서 학칙으로 결혼을 왜 금지시키는 것이냐는 논리다.

금혼조항은 갖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결혼을 하고도 '쉬쉬' 한다거나, 혼인신고를 미루는 고육책으로 제재를 피해가기도 한다. 어떤 이는 사정상 4학년때 결혼을 하고도 혹시 학교에 알려질까봐 졸업때까지 마음을 졸인 경우도 있어 전통을 중시하다가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규정이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켜질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대측은 3년전 자체 여론조사에서 60~70%가 학칙존속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고 신중히 학칙개정 문제에 접근하겠다고 말했었다.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대의 금혼학칙이 인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대가 결국 엊그제 금혼학칙을 전격 폐지키로 했다. 총학생회와 여성단체연합회 모두 일단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개화기 신교육과 여권신장에 기여한 이대로서는 당연한 조치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금혼학칙으로 제적된 학생들에 대해서도 소급해 구제해주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57년을 고수한 금혼학칙이 이제 허물어졌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중·고교의 남녀공학 추세에 맞춰 세종대 상명대 한성대 등이 남학생을 받아들였듯이 남녀공학 얘기가 안 나올는지 자못 궁금하다. <이준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