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열차 하면 1883년 유럽에 처음 등장한 오리엔트 특급부터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런던~파리~베니스를 1박2일 왕복하는 '베니스 심플론 오리엔트 익스프레스'가 대표격이다. 승객의 이름까지 불러주는 정중한 안내, 우아하고 세련된 실내음악, 보드라운 바닥 벨벳과 고풍스러우면서도 품위 있는 장식 가구, 최고급 요리의 만찬 향기, 검은 넥타이와 이브닝드레스의 승무원 등 격조 높은 분위기에 걸맞게 요금도 비싸 2002년 12월 현재 런던~베니스가 1천910달러, 파리~로마가 2천195달러다. 다만 이름만은 '오리엔트(동방) 특급'도 '캐빈(오두막집)호'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름도 제격인 오리엔트 특급은 싱가포르~방콕 등 아시아에도 있고 모스크바~투르주바(중국국경) 왕복 16일간의 오리엔트 특급은 장장 1만㎞나 된다. 이런 오리엔트 특급이 고전풍이라면 프랑스의 TGV를 비롯해 북서유럽을 달리는 탈리스(Thalys)와 런던~파리의 유로스타, 독일의 ICE, 스페인의 AVE, 스웨덴의 X2000, 유럽 도시간의 야간열차인 EN(Euro Night), 일본의 신칸센(新幹線) 등은 현대적인 특급 고속 열차다.
하지만 특급열차가 모두 고속은 아니다. 스위스 산악지대를 달리는 시스알파이노, 체르마트~모리츠의 빙하특급, 해발 2천253m까지 올라가는 베르니나 특급, 13세기 스위스의 전설적 영웅 이름을 딴 윌리엄 텔 특급 등은 느림보로 유명하다. '화륜거(火輪車) 구르는 소리 천지가 진동하고/ 수레 속에 앉아 영창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내딛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1899년 9월8일 경인선 개통을 알리는 독립신문 기사처럼 '놀라운 괴물'로 등장한 우리의 열차는 어떤가. 일제 때의 융회호, 히카리(光), 아카스키(曉)와 광복 후의 해방자, 재건, 증산, 신라, 풍년호를 거쳐 지금의 열차 이름이 됐지만 특급 하면 아직까지는 새마을호 뿐이다.
그런 새마을호가 금년 말 역사의 거품으로 꺼지고 '태극호'로 바뀐다니 아쉽다. 유구한 '기아(飢餓)선상' 퇴치 운동의 상징이자 세계가 놀란 경제 부흥의 슬로건이었던 게 '새마을'이 아니었던가. <吳東煥(논설위원)>吳東煥(논설위원)>
새마을호
입력 2003-01-26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1-26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