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은 구리 다음으로 인간이 가장 먼저 사용한 금속이라 한다. 이미 기원전 3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선 금으로 투구를 만들어 썼다고 하며, 고대 이집트 왕릉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게 호화로운 금제품들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인은 금을 화폐로 사용했고, 이 제도를 로마인도 이어받았다고 한다. 비단 그리스 로마 뿐 아니라 예부터 많은 국가와 민족이 금을 화폐의 기준으로 사용해왔다. 그만큼 금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왔고, 또 그런만큼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해오기도 했다. 예부터 금이 대표적인 치부수단 또는 부(富)의 저장수단으로 활용돼온 것도 다 그런 덕분이라 하겠다.

그같은 금이 5년 전 외환위기 땐 우리 나라 경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때 우리 국민은 그야말로 구한말(舊韓末)의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정신으로 ‘금모으기’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었다. 장롱 속에 퇴장(退藏)돼 있는 금을 모아 수출, 외화를 벌어들인다면 외환 고갈에 다소나마 기여하게 되리란 기대에서였다. 너도 나도 한마음으로 갖가지 금제품들을 들고 나왔으며 심지어 아기 돌반지까지도 아까운 줄 모르고 내놓았다. 덕분에 무려 3억~4억달러의 금 수출 성과를 거두었고, 나라를 구하려는 국민의 단결된 의지와 역량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최근 일부 부유층 사이에 ‘금사재기’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 위기로 국제 금값이 올라 투자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 정권교체기 동안 주식과 부동산 투자시장에 대한 불안감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당연한 결과로 금괴 수입이 크게 늘어나고 덩달아 금괴 밀수입도 급증, 지난 해 밀수입 규모가 자그마치 1천561억원으로 전년도보다 40배나 넘게 늘었다고 한다.

바닥난 외화를 보충하자며 ‘금모으기’운동을 벌이던 때가 언제인데, 이젠 또 외화를 써버리지 못해 ‘금사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긴 한창 ‘금모으기’를 할 때도 단기차익을 노려 ‘금사재기’에 나섰던 일부 부유층이 있었다고도 하니까, 새삼 한탄할 일도 못되는지 모르지만.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