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과 새들도 고향을 그린다. 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首邱初心)고 했고 호마(胡馬)는 늘 북풍을 향해 서는가 하면 남쪽 월(越)나라에서 온 새는 나무에 앉아도 남향한 가지만 골라 앉는다고 한다. 그러니 하물며 사람이랴.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메밀꽃 하얗게 피는 곳…' 시인 노천명(盧天命)의 이런 망향(望鄕)의 시가 아니더라도 인간에겐 누구나 향수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왜 목화 꽃 곱고 메밀꽃 새하얀 고향을 그릴 때도, 뽕나무와 가래나무가 우거진 향리(桑梓之鄕)를 그리워할 때도 '향상(鄕想)'이라 하지 않고 '근심 수'자를 달아 '향수(鄕愁)'라 말하는가. '고향=근심'이란 뜻인가. 아니, 그냥 근심 정도가 아니다. 영어의 노스탤지어(nostalgia)는 '되돌아감'과 '아픔'이 합쳐진 그리스어에서 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까 고향을 그리는 향수란 곧 병(病)의 일종인 향수병, 회향병(homesick)인 것이다. 한데 향수를 그토록 병으로 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야 문뜩 고향만 떠올리면 무언가 뭉클하게 가슴부터 차 오르고 콧잔등이 시큰해지기 때문이고 무성했던 가지 끝 잎새들이 앞다투듯 낙엽져 뿌리로 돌아가듯 흙으로, 뿌리로 돌아가는 연습을 은연중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뿔뿔이 낙엽처럼 타향 땅에 흩뿌려졌던 가족들이 뿌리라는 구심점을 향해 모여드는 설 귀향 연휴가 내일부터다. 그런데 신정이 보통 1주일∼열흘씩 노는 일본의 최대 명절이라면 구정인 설의 대표적인 나라는 우리보다는 역시 13억 인구의 중국이다. 그들이 설(천지에→春節) 명절에 장장 열흘∼2주일씩 쉬는 까닭은 고향에 가는 데만도 보통 몇날 몇밤을 꼬박 열차로 지새워야 하기 때문이다. 고향을 뿌리(부모)의 집이 있는 시골(家鄕), 고향집을 '늙은 집(老家)'이라 부르는 것도 그들답다. 우리는 어쩌랴. 끽해야 반나절이면 한반도 우리 땅 어디든 고향 '늙은 집'에 가 닿을 수 있는데도 못 가는 실향민이라니! <吳東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