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서양 중세 봉건사회의 종말을 앞당긴 최대 사건으로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페스트의 일종)을 꼽는다. 빠른 전염속도와 가공할 치사율이 당시의 사회구조를 붕괴시킬 정도였기 때문이다. 1346년경 크리미아 반도 남부 연안에서 발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은 불과 3~4년 사이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사망률은 거의 100%에 가까웠다. 그래서 불과 몇년 사이에 유럽의 인구는 3분의1 이상이 사라졌다. 일례로 프랑스 파리의 경우 총인구 15만에서 5만이 죽었다고 한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에이즈를 사람들은 서슴없이 ‘현대판 흑사병’이라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환자가 발견된 이래 불과 20여년 사이 자그마치 6천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감염시켰고, 이중 2천200여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문란한 성풍조 확산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는 이 질병은 지난 84년 그 실체가 규명되긴 했다. 하지만 아직은 치료제가 없다.
 에이즈가 가장 극성을 부리는 곳은 아프리카로 총인구의 15~36%가 이 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에이즈는 이곳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맹위를 떨쳐 하루에도 1만6천여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6~7년 후면 감염자가 무려 1천만명에 이르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지난 1985년 처음 감염자가 발견된 이래 98년까지 연간 100명 안팎에 머무는 등 비교적 감염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그러나 99년 이후 200명으로 배가 늘더니 급기야 작년 한해엔 400명으로 급증, 전체 감염자 수가 2천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이 돼가고 있다.

 중세의 흑사병은 발병원인과 치료법을 몰랐었기에 속절없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반면 에이즈는 비록 치료제가 없어도 실체는 밝혀졌다. 따라서 조심만 하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게 쉽지를 않다. 문란한 성풍조 확산과 퇴폐·향락산업의 번창 등 에이즈 번성을 부추기는 요소들이 곳곳에서 맹위를 떨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두렵다.
 박 건 영〈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