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아테네(Athene)와 북유럽 신화의 오딘(Odin), 로마 신화의 여신 벨로나(Bellona)와 이집트 신화의 여신 세크메트(Sekhmet). 그들 '전쟁의 신'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문을 걸어 잠그고 이마를 맞대 이제 곧 터질 이라크 전쟁에서 몇 명이나 지옥으로 부를 것인가를 담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쟁이란 영국의 속담처럼 '죽음의 축연(祝宴)'이기 때문이다.
세개의 눈을 부라리며 삼지창(三枝槍)을 꼬나들고 있는 인도교(힌두교) 전쟁의 신 시바(Siva)는 어떤가. 두 눈은 걸프만 쪽을, 나머지 한 개의 눈은 한반도 쪽을 노려보고 있지 않을까. 아니지. 그도 진화해 10개, 100개의 눈으로 삼지창이 아닌 미사일과 핵폭탄을 받쳐들고 있을 것이다.
지난 달 15일 앤젤 배체라는 세 살배기 꼬마가 너무나 애처로웠다. 미 캘리포니아주 펜들턴 기지에서 페르시아만으로 떠나는 해병 아빠를 붙들고 아무리 “전쟁하러 가지 말라”고 울어도 그는 떠나야 했고 세계적인 석학 촘스키 MIT 교수가 “전쟁은 미친 짓”이라며 꾸짖어도 크고 작은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연일 폭발한다. 숱한 평화주의자들이 10월 21일 '국제 반전(反戰) 데이'에 시위를 해도 효과는 없다. 왜 그런가. '전쟁의 목적은 평화'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쟁 이유 합리화보다는 다윈의 주장처럼 인간은 본시 '전쟁 본능'을 타고나기 때문이고 '호모 사피엔스(理性人)'이기 이전에 '호모 훈디톨(投石人)'이기 때문이다.
다만 '죽음 없는 전쟁'의 실현만을 동화 속 공주처럼 꿈꿔 볼 따름이다. 첨단 화학물질, 생물공학, 초음파, 레이저 등을 이용, 적군을 무의식 상태에 빠뜨리고 적의 장비에 고장을 일으켜 승리로 이끈다는 게 오늘날의 첨단과학이 꿈꾸는 이른바 '죽음 없는 전쟁'이다.
또 지난 해 미국이 아프간 전쟁 때 첫선을 보인 로봇 병사의 대리전은 어떨까. 그러나 아직은 환상 쪽에 가깝다. 제발 전쟁 신들의 '한반도시나리오'가 취소되기를 바라고 모처럼 뻥 뚫린 남북간 관광 육로의 바람구멍(風穴)이 전쟁 신들의 입김 통로가 되지 않기만을 앙망할 뿐이다.
吳東煥(논설위원)
전쟁 본능
입력 2003-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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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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