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한창 뜨거운 열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적자생존에 기반한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이 민족간에도 적용된다는 이른바 사회적 다윈주의가 번지면서 인종차별 민족주의 군국주의 열기를 광적으로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민족을 경쟁자 또는 적으로 보게 되면서 민족간 전쟁을 촉구하게 됐고, 당연히 그것이 당시로선 움직일 수 없는 정의(正義)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생동하는 젊음이 최상의 아름다움으로 평가되면서, 영광을 위하여 영웅적 행동을 상찬하는 풍조는 전쟁을 멋있고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어느 독일장군은 이런 말까지 했다.

“설령 우리가 패배한다 하여도 전쟁은 아름답다.”

결국 전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정의구현 수단으로 간주됐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몇몇 국가들의 패거리 싸움, 곧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아름답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전후방도 없이 벌어진 치열한 전면전의 결과 1천만이 넘는 사망자와 그 두배가 넘는 부상자가 나왔고, 숱한 국가의 재정파탄 및 영토 황폐화를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엄청난 참화가 인류를 각성시키지는 못했다. 참화가 가져온 낙담과 좌절은 되레 민족간의 증오심을 더욱 강력하게 키웠고, 폭력에 대한 신앙심만 한층 부추겼던 것이다.

마침내 또 한번의 패거리 싸움(1939~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무려 5천만명이 넘는 인명손실 등 사상 최대의 전쟁폐해를 남기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 역시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했다. 그 후로도 지구상 곳곳에선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지구촌 한편에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정의를 내걸고…. 아마도 정의는 전쟁을 통해서만 구현된다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지난 주말 세계 곳곳에서 1천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 사상최대 반전시위를 벌였다지만, 글쎄 그것이 과연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지. “전쟁을 증오한다”고 외친 아이젠하워 장군도 자신이 참전했던 전쟁을 마친 다음에야 비로소 그렇게 말했다니까. /朴健榮(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