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가 아니라 '사고'다. 세상 천지, 하늘 아래 땅 위에 바다 위에 '사고'면 사고지 '안전한 사고'가 어디 있는가. '안전불감증'도 잘못된 말이다.

“괜찮아 괜찮아” “안심해” “걱정 붙들어매” “신경 팍 꺼” 어쩌고 해가며 '안전'을 지나치게 느끼고 너무나 믿는 '안전과신증'이고 '안전과민증'이지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는 '안전불감증'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고질과 고황은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불안전, 위험, 위태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불안전불감증'인 것이다. 둘러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 아니냐 할지 모르지만 아니다.

또 하나의 악질(惡疾)은 '책임불감증'이다. IMF 태풍을 불러 숱한 기업과 가정을 풍비박산, 거리로 내몰고 자살로 몰고 노숙자를 만들어도 누구 하나 된통 책임지는 사람 없고 치가 떨리는 지하철 화재로 수많은 선민(善民)을 원귀(寃鬼)로 만들고도 “내가 죽일 ×이오”하고 나서는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다.

98년 태국 환란(換亂) 때 암누아이 전 재무장관과 링차이 전 태국은행 총재가 서로 “내 탓”이라고 나서자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가로막은 사람은 차왈릿 총리였고 더욱 놀라운 것은 책임 없는 후임 태국은행 총재까지 사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후앙다이조우(黃大洲) 타이베이(臺北) 시장이 처벌을 자청, 94년 10월 27일 낸 사표 이유는 달랐다. 가라오케 화재로 13명을 타 죽게 한 책임 때문이었다.

'책임=자살'은 일본의 전통이다. “책임을 묻노라.” 한 마디에 배를 가르는 이른바 '셋푸쿠(切腹)'가 아니더라도 책임 통감으로 자살하는 예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99년 5월 장기신용은행 경영 파탄 책임으로 자살한 우에하라(上原) 전 부총재를 비롯해 기업 부도와 대형 사고 때마다 그랬다. 미국의 전 엔론 부회장 백스터가 작년 1월 자살한 이유도 망친 경영 책임 때문이었다.

자살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엄중한 처벌을 자청하는 책임자쯤은 우리 사회에도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안전불감증, 아니 지독한 '불안전불감증'과 '책임불감증'을 확 뜯어고칠 묘약이 아쉽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