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새벽 자동응답기에서 들리는 아내 멜리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션, 나예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한 것 같아요. 사방이 온통 연기예요. 사랑해요.” 미국을 강타한 9·11테러. 세계무역센터에 갇힌 희생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집어들었고, 지상의 친지들과 눈물의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한 중국계 미국인이 친구에게 남긴 유언은 너무 자연스러워 비장하기까지 하다.

“비행기가 충돌했다. 지금 일생의 마지막 아침을 먹고 있다. 행복하게 살아라.” CNN의 논평가로 활동했던 바버라 올슨은 남편인 미 법무차관 테드 올슨에게 납치된 비행기 안에서 2통의 전화를 남겼다.

남편 테드는 피랍상황을 설명했던 첫번째 통화내용을 공개했지만, 두번째 통화는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마도 영원한 이별을 앞둔 절절한 사랑의 밀어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당시 희생자들은 휴대폰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 즉 유언을 전달한 매개체였다.

지난 18일 대구에서 발생한 지하철화재 참사에서도 휴대폰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지하의 희생자들과 지상의 가족들을 이어준 최후의 끈이었다.

신혼의 주부는 새신랑에게 “사랑해”라고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맞벌이에 나선 한 젊은 아내는 “문이 안열려요. 살려줘요”라고 호소하더니 잠시의 침묵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유언을 남겼다. “사랑해요. 애들 보고싶어….”

그러나 대구의 희생자들은 세계무역센터의 희생자들에 비해 생을 정리할 마지막 순간이 너무도 짧았다는 점에서 불운했다. 상당수의 희생자들이 급작스러운 사신(死神)의 방문에 놀라 “살려달라”는 피맺힌 절규를 남긴 채 쓰러져야 했다.

희생자와 실종자의 휴대폰 유언이 우리에게 남긴 큰 교훈이 있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착하다는 것이다. 영문 모를 죽음 앞에서도 '사랑의 메시지'를 남겼을 뿐, 누구 하나 저주의 말을 남긴 사람들이 없다.

그들이 남겨놓은 '사랑'의 의미를 소중히 보듬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 책임을 다하려면 저 선량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원인을 철저히 밝혀 다시는 이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텐데….
/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