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사의 한 마디, 한 구절이 그대로 금언(proverb)이 되고 격언(maxim)이 되고 경구(epigram)로 굳어지는 수가 많다.
“국가는 국민의 것이다. 국민이 정부에 염증을 느끼면 언제든 혁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링컨의 취임사였다.
마치 쿠데타라도 부추기는 듯한 이 말은 국가의 소유권자가 대통령도 정부도 아닌 국민임을 역사 등기소에 보전등기(保全登記)케 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의 케네디 취임사도 유명하다.
요즘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랬다가는 오만방자로 오해받기 십상인 이 말 또한 그대로 격언이 돼버렸다.
미국 대통령 취임사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시대 매듭짓기'다. 북한의 존재는 깜빡했는지 “전체주의 시대는 소멸돼 그 낡은 사상은 고대의 생명 없는 나뭇잎처럼 날아가 버렸다”고 한 것은 부시(89년)였다.
“예속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 것은 존슨이었고 “대결의 시대는 마감되었다”고 한 것은 닉슨이었다. 세 번째 특징은 세계 경찰국가다운 지구적 레토릭(修辭)이다. 아이젠하워는 “신은 미국에 자유세계의 지도자 책임을 부과했다”고 했다.
이 말 중 '자유세계'를 '전세계'로 바꿀 사람이 바로 지금의 부시인지도 모른다. 카터 역시 “어느 나라의 평화와 자유에도 무관심할 수 없다”고 외쳤다. '평화'와 '전쟁'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된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우리의 대통령 취임사는 어땠는가. 박정희 대통령의 1인칭 대명사 '나는, 나는…'이 전두환 대통령의 '본인은, 본인은…'과 노태우 대통령의 '저는, 저는…'을 거쳐 김영삼 대통령의 '우리는, 우리는…'으로 바뀌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신기했다고나 할까.
같은 16대 대통령으로 고난의 길을 걸은 것까지 링컨과 닮았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취임사엔 '국민'이 19번, '동북아'가 15번, '평화'가 14번, '한반도'가 9번이나 나온다.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뿐 아니라 동북아까지도 책임지고 대표하는 '스타 대통령'이 되겠다는 웅지(雄志)가 아닐까. 마치 광개토대왕의 의지가 엿보이는 듯하다./吳東煥(논설위원)
대통령 취임사
입력 2003-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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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2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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