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강국 대한민국의 지난해 주류시장 규모는 총 7조2천300억원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가장 많이 팔린 주종은 역시 맥주로 전체시장의 46.8%인 3조3천800여억원을 기록했는데, 500㎖짜리 40억8천만병에 달한다.
15세 이상 모든 남성이 1년에 120병을, 국민 1인당 각각 80병을 마셔야 달성할 수 있는 수치다. 소주는 27억9천만병을, 위스키는 636만명을 마셨다니 통계로만 보면 한국사람은 1년내내 제정신일 때가 별로 없는 셈이다. 그야말로 비주류(非酒類)가 발붙이기 힘든 나라인 셈이다.
그러나 술이 사회적 긴장도를 완화시켜주는 명약인 것만은 틀림없다. 특히 서민들의 퇴근길 동반자로 자리잡은 생맥주 한 잔의 청량감은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불화를 해소시켜 주고 의사를 소통시켜 주는 사회적 윤활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위스키나 소주와 만나 폭탄주로 이어지기 십상인 병맥주의 야만성과 달리 생맥주는 웬만해선 자체의 본성을 잃지 않는 순수함이 있어 좋다. 사실 생맥주는 기원전 4천년경 바빌로니아에서 이어져 내려온 맥주의 원형을 가장 순수하게 지켜내고 있는 술이다.
술보다는 대화를 중시하는 본래의 음주문화를 선호하는 젊은이와 도시형 샐러리맨들에게 생맥주가 인기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참여정부 초대 국무총리인 고건 총리는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는 직원과 함께 생맥주집에서 격의없는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생맥주와 대화'가 그의 화려한 공직생활의 버팀목이 됐음직하다.
최근 노동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평양 시내에 생맥주집이 성업중이라고 한다. 평양시인민봉사총국이 운영하는 체인점 '대동강 맥주집'이 중구역 평천구역 보통강구역 모란봉구역 등 평양시내에 150개나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 생맥주집의 경우 하루 500㎖ 컵 2천개의 판매량을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끈다니, 생맥주가 북한의 폐쇄적 체제의 동맥경화를 해소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3·1절 민족대회에 참석한 북한 종교인들이 남한의 성당과 교회 그리고 사찰에서 입을 맞춘 듯 일제히 대미 통일전선 형성을 외치는 모습과, 생맥주로 상징되는 '평양의 변화'가 영 동떨어져 보이니, 아직까지는 생맥주 판매량이 모자란 탓 아닌가 싶다.
평양의 생맥주
입력 2003-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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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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