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 어느날 새벽, 미국의 수도 워싱턴시 워터게이트 건물내에 있는 미 민주당 사무실에 괴한 5명이 침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경비원 신고로 즉각 출동한 경찰 조사결과 그들이 도청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들어갔음이 드러났다. 아울러 그중 한 명의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 옆에 'W.H'와 'W.House'가 표시되어 있는 것도 발견됐다.
다른 곳도 아닌 야당(민주당)사무실 침입사건이라 미국사회가 온통 들썩거렸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백악관은 단지 ‘3급 강도침입 사건’일 뿐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이것이 되레 더 큰 의혹을 불러,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벌스타인의 끈질긴 추적끝에 엄청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R·M 닉슨 대통령 정권의 민주당 선거방해 공작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일로 닉슨은 1974년 8월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고 만다.
당초 닉슨은 도청사건과 백악관의 관계를 철저히 부인했었다. 그러나 차츰 진상이 규명됨에 따라 대통령보좌관 등이 관여했고, 대통령 자신도 사건의 무마공작에 나섰던 사실이 폭로됐다.
당연히 국민 사이에 불신 여론이 높아져 갔고, 마침내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 탄핵 결의가 가결돼 닉슨이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임기도중 대통령이 사임한 것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으며, 미국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런 미국이 이번에 또 도청 파문에 휩싸였다. “미 정보당국이 유엔본부에 파견된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대표들의 전화와 이메일을 도청하고 있다”고 영국의 한 일간지(가디언 주말판 옵서버)가 보도한 것이다. 이라크 공격을 위한 2차 안보리 결의안 표결에서 찬성표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신문은 그동안 유엔 대표부 외교관들에게 암암리에 알려져 있던 미국의 도청 의혹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도 전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그 옛날 그토록 망신을 당했건만 한번 들인 버릇이라 영 고쳐지질 않는 모양이다. 그나 저나 30여년 전 대내적 도청 때는 대통령 사임까지 몰아가는 대 폭풍이 일었었는데….
/박건영(논설위원)
세살버릇
입력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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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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